막걸리 한 되
막걸리 한 되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 승인 2020.11.1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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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눈길을 떼지 못하고 지나온 곳을 바라보는 나다. 시간을 붙잡고 싶다. 간이휴게소에 들러 오늘의 만남을 음미하고 있자니 노을 속에 번진 미소가 쉬 지워지질 않는다.

세 번째 발간한 산문집을 찾으러 읍내 출판사로 가는 길목, 설렘과 흥분된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달뜬다. 그곳은 문인들의 방앗간이기에 기다리는 이 없음에도 마음이 바쁘다. 잉크 냄새가 솔솔 풍기는 출판사 입구에서 뜻하지 않게 문우님들을 만났으니 행운의 날로 오늘은 횡재한 날이다. 문우님들은 귀한 만남이라며 맛난 국밥을 대접하시겠단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도시와 시골 중간에 낀 샌드위치 같은 읍내이지만 내심 정갈한 맛 집이나 체인점을 상상하며 따라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음성읍내 장날이었다. 전통시장도 전문화 시대 발맞춰 현대화 시설로 아케이드 설치로 특별하게 변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은 비가림막도 없는 노점 장터로 명맥을 이어가는 장터다. 바람결에 허리가 휘어지도록 흔들리는 갈대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노점 행거에 걸려 있는 형형색색 옷가지들, 시골 아낙의 발걸음을 잡아 한참 흥정 중이다. 김장철을 맞아 젓갈을 퍼 담는 이들, 털신을 구매하는 이들, 오가는 이들의 어깨를 부딪치며 지역 문우님들은 장터 골목 포장마차 국밥집으로 안내한다.

시끌벅적한 노점 국밥집을 쭈빗쭈빗 거리며 들어섰다. 장터 골목 못지않게 북새통인 국밥집, 세월이 내려앉은 낡은 탁자는 청결하곤 먼듯하지만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듯 희끗희끗 빛바래 있다.

장날마다 단골이라는 문우님은 거침없이 `막걸리 한 되요'를 외친다. 주인 아낙 또한 힐끔 돌아보며 `아, 예'주문서도 없다. 막걸리 한 병도 아니고 한 주전자도 아닌 한 되! 이 말은 `어이, 주모 막걸리 한 되 주소'라고 흑백영화에서 본 직한 추억의 단어 아니던가. 연신 `막걸리 한 되요'를 중독성 있게 따라 하면서 편안해지는 이 기분은 또 뭘까?

왕대포에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지짐에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의 시름과 고달픔을 달래며 우정 쌓던 막걸리. 선술집의 풍경이 얼비추며 절로 감성에 젖어드는 그때, 꼬질꼬질한 앞치마의 주안상을 차리는 아낙은 또다시 과거로 뒷걸음치게 한다. 양은 쟁반에 찌그러진 누런 양은 막걸리 주전자와 더 찌그러진 양은 막걸리 대접에 김치와 선짓국과 순대만으로도 한 상이다. 선 듯 손 이 가지 않은 주안상, 한입 겨우 떠먹은 선짓국과 순대 맛이 상상외로 일품이다. 감칠맛 나게 당기는 맛은 손가락까지 빨게 하는 알 수 없는 맛의 매력에 한 접시를 금 새 비웠다.

심술부리듯 불어대는 바람은 천막을 가만두질 않는다. 연신 펄럭이는 천막 소리는 대형마트 입구에 길게 쫙 세워져 휘날리는 세일 홍보 배너 현수막 소리와 흡사하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현대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삶의 현장 같은 장터. 휴먼 드라마에 울고 웃는 우리들, 형식도 격식도 없이 조금 지저분하고 시골스러워도 발길이 머물고 그리워지는 건 원초적 본능 같은 따스한 정으로 부대끼며 고향을 그리는 건 아닐까. 망루에 걸린 노을이 유난히도 따스운 오늘, `막걸리 한 되요'가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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