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의 가능성
상심의 가능성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11.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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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바야흐로 가을 야구 시즌이다. 야구의 꽃이자 축제인 플레이오프 2차전이 이제 막 끝났고, 3차전이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두산과 KT가 월요일에 보여준 플레이오프 1차전은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고졸 신인 투수 소형준 선수는 두산의 외인 투수 플렉센에 맞서서 역투와 호투를 보이며 신인왕 후보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와호장룡, 2000년 개봉한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은 직역하면 `웅크린 호랑이와 숨은 용'이라는 뜻이다. 영화가 의미하는 바에 따라 의역하면 `강호의 숨은 고수들'정도랄까?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청조 말엽, 당대 최고였던 무당파의 수제자 리무바이는 열반에 들었다가 깊은 슬픔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을 통해 강호를 떠날 결심을 한 그는 선대부터 내려오는 칼인 청명검을 오랜 연인이자 동료인 수련을 통해 북경의 호족 태대인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 칼을 정체 모를 자객이 훔쳐가고, 수련은 범인의 뒤를 쫓아 결투를 벌이지만, 결국 검도 자객도 놓치고 만다. 범인의 행적을 뒤쫓던 수련은 옥대인의 딸인 용을 의심하게 되고, 실제로 용이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이며 `푸른 여우'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련과 함께 청명검을 찾아나선 리무바이는 용이 무당파의 무공을 전수받을 수제자라는 것을 직감하고 설득하지만, 용은 거절한다. 용은 그녀를 납치했던 마적단 두목 호를 사랑하고 강호의 삶도 동경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지만, 집안의 강요로 원치 않는 혼인을 앞두고 있는 처지다. 그런 용은 결혼식 날 결국 도망쳐 강호의 일인자처럼 굴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그런 용을 바로잡으려다 리무바이 역시 푸른 여우에게 목숨을 잃는다. 리무바이가 맞은 독침을 해독하려 동분서주하던 용은 리무바이와 수련의 바람대로 연인 호에게 돌아가지만, 결국 깊은 절벽의 안갯속으로 몸을 던진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리무바이와 용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야기라고도 하고, 리무바이가 심취한 도교의 주장, 즉 무위자연을 드러내는 이야기라고도 한다. 또 무협영화지만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고도 한다. 실제로 리무바이는 친구의 연인이었던 수련에게 죽음의 문턱에서 뒤늦게나마 마음을 고백한다. 마적단의 두목 호는 귀족집안의 용을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용은 연인인 호를 남기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사실 던진다는 표현보다는 절벽의 안갯속으로 `뛰어든다', `날아든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리무바이의 허무한 죽음, 연인을 잃은 수련의 아픔을 온전히 다 품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허무하지도, 뿌듯하지도 않은 표정, 표정이 없으나, 모든 표정이 다 있는 모습으로 사라진 것이다.

바로 그 마지막 장면, 용의 표정에서 상심의 가능성을 보았다. 키에르케고르는 신과 관계를 맺지 못한 자아는 절망의 상태에 있으며,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절망을 벗어나서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절망은 정의상 신앙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그것에 관한 의식이 고양되는 것은 신앙에 대한 열망이 고조된다는 것을 뜻하며, 이 점에서 절망은 자아실현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상심의 가능성은 바로 이 상황에서의 절망을 가리키는 용어다. 용이 절벽으로 뛰어내린 덕분에 호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상심의 가능성의 관점으로 보면 호의 소원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1차전에서 잘 던지고도 패배를 맛본 신인 투수 역시 그 절망의 상황에서 상심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 절망이 그를 대투수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플레이오프 3차전, 물러설 곳 없는 KT는 배수의 진으로 결전을 준비할 것이다. 두산 팬으로서 KT의 선전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KT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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