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가 가능하기까지
디지털 성범죄가 가능하기까지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0.03.30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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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찍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박사방'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17일 구속됐다. 올해 1월 17일 SBS 궁금한 이야기Y에서 텔레그램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처음으로 소개된 후 두 달 만의 검거다. 소문만 무성했던 인터넷상의 성범죄가 각 언론사의 꾸준한 취재로 박사방은 물론 비슷한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가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터져 나온 이 뉴스는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10대 미성년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운영자가 25살 청년이란 점과 그가 운영하는 텔레그램에 가입해 암묵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한 수가 26만명으로 드러나면서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결국, 이 파장은 용의자의 신상공개와 포토라인에 세우라는 국민청원으로 이어지면서 23일 신상이 공개됐고, 비살인자, 성폭력범으로는 처음으로 신상공개와 포토라인에 서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러나 신상이 공개되면서 사건의 본질도 희석되는 분위기다. 용의자의 가정환경부터 학교생활과 군 생활까지 거론되면서 사건보다 뒷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정보가 정보로 확대되면서 성착취로 고통받은 여성들은 또 다른 사회적 이유로 성적 수치심과 제2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 과정을 보면 현대정보사회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민번호나 전화번호만 알아도 CCTV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고, 심지어는 개인의 약점을 빌미로 조작과 협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정보만 손에 쥐면 누구를 막론하고 협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실제 용의자는 익명성을 이용해 데이트만 해도 큰돈을 주겠다는 광고로 10대 여성들을 유인하고 그들의 개인정보를 빼내 성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개인정보 노출이 쉬운 유명인사도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 정보 접근이 쉽다 보니 용의자는 치밀하고 철저하게 개인의 약점을 찾아내 협박하는 대담성도 드러냈다.

바코드로 인식되는 물품처럼 내 정보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정보의 바다를 유랑하며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서서 저명인사들을 언급하며 논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범죄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정보는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정보사회로 대처할 수 있는 IT강국 한국의 양면성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디지털 성범죄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코로나19 사태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소통창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자처했던 국가들도 한국을 배우자는 분위기로 돌아선 것은 바로 IT강국의 장점이 효과적으로 발휘되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범죄는 인터넷이란 공간 속에서 더 은밀해지고 교묘해지고 있다. 특히 성범죄는 판단력이 부족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특징과 유형을 분석한 결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의 91.4%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앱을 통해 이루어졌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처럼 10대와 20대 청소년들의 디지털 성범죄가 가능하기까지에는 허술한 정보관리가 한몫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늦었지만 성범죄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규정을 만들고, 철저한 정보 관리로 은밀해지는 범죄의 싹을 잘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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