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정월대보름 풍경
사라지는 정월대보름 풍경
  • 조순현 박사·충북민요연구회
  • 승인 2020.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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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조순현 박사·충북민요연구회
조순현 박사·충북민요연구회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 토곡마을에 통수바위고개가 있다. 바위 복판이 갈라져 물이 통한다고 통수바위고개라고 불렀다. 고갯마루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고개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서 오궁리와 면 소재지를 다녔다. 38번 국도에서 마을 진입로가 생기기 전까지 어린아이들도 이 고개를 넘어 감곡초등학교를 다녔다. 통수바위고개를 지날 때는 서낭당에 절을 하고 다녔다. 토곡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서낭당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치성을 드려왔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는 집집마다 볏짚을 한 아름씩 안고 마을 복판으로 모여들어 이엉을 엮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엉 엮기가 끝나면 풍물을 치며 서낭당으로 걸어간다. 서낭당지붕 이엉을 새로 덮고, 백설기와 돼지머리, 북어, 과일 등을 차려놓고 서낭제를 지낸다. 초가지붕으로 지은 서낭당이 1980년 정월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후 평화롭던 마을에 크고 작은 변고가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서낭신이 노한 것이라 믿고 1991년 마을노인회 주관으로 비석에 성황신위 위패를 모시고 돌로 서낭단을 만들었다. 옛날에는 떡시루에 통북어를 꽂아 두고 종지에 들기름을 담아 실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었다. 서낭제에는 남자들만 참석한다.

서낭제를 지낸 다음에는 아이들이 예로부터 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가재줄다리기놀이를 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 서낭제를 지내는 날이면 아이들이 제사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모여들었다. 고사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떡과 과일을 나누어 주고 서낭당 아래 잔디밭에서 가재줄다리기놀이를 시켰다.

가재줄다리기놀이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허리에 새끼줄로 묶고 엎드려 서로 당기는 것이다. 힘이 센 사람에게 힘이 약한 사람이 끌려가면 지는 것이다. 70년도 중반부터는 마을에 아이들이 줄어들어 청년들이 대신 가재줄다리기놀이를 이어오다가 80년도 이후에는 사라졌다.

가재줄다리기놀이가 끝난 후 풍물을 치며 마을로 내려와 마을 복판에 서서 마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느티나무에 고사상을 차려놓고 계수제를 지낸다. 계수제에는 여자들도 소지를 올리고 절을 한다. 옛날에는 느티나무 아래 넓적한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에 음식을 차려 놓고 고사를 지냈다. 계수제가 끝난 후 아랫마을 사람들과 윗마을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했다. 이웃마을 구경꾼들도 많이 모여들고 떡장수, 엿장수, 술장사도 와서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모여 마을의 전통을 지키며 하루를 즐기는 화합의 한마당이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돌아와 커다란 축제가 되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옛날부터 음력 대보름날이면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위하여 지내오던 서낭제와 가재줄다리기놀이를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고사상만 차려놓고 마을 노인회장과 이장이 대표로 고사를 지냈다. 토곡마을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며 마을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해동 노인회장은 마을에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이 줄어들고 고령화로 언제까지 서낭제가 이어질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고 했다.

지금 전통을 알 수 없는 무형문화재지정 신청이 난무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후대에 전승 보존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명일 것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재지정을 위한 각색과 연출은 전통문화를 변질시킬 염려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해마다 전통을 지키며 전승하고 있는 토곡마을의 서낭제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무형문화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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