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썼다, 백설 공주
애썼다, 백설 공주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11.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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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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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중에 읽었다고 착각하는 이야기가 몇 편 있다. 신데렐라가 그렇고 백설 공주나 콩쥐 팥쥐가 그럴 것이다. 아마도 줄거리가 서로 비슷하고 ‘그래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결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혹은 만화로 이미 수없이 봤던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기회가 있어 원작을 잘 살린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비룡소』를 읽게 되었다. 표지에 그려진 백설 공주는 트레싱지처럼 투명하고, 맑은 소녀였다. 내 기억은 디즈니 백설 공주만 알고 있어, 유럽 쪽 어린 소녀의 얼굴을 보곤 좀 놀랐다. 읽을수록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 다른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무엇보다 그림이 심리학 책을 연상시킬 만큼 깊고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웃 나라 왕자와 결혼한 백설 공주의 결말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인생을 단순 명료화로 압축해버린 것이 아니라 새엄마가 불에 달군 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로 마무리된 것이다. 역시 뭐든 원작을 읽어야 제대로 책 맛을 볼 수 있다.
못 된 새엄마의 계략에 성 바깥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공주는 숲 속을 헤매다 일곱 난쟁이 집에 들어가게 된다. 다행히 일곱 난쟁이는 공주를 받아주었고 공주는 공짜로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온갖 집안일을 맡아 한다. 성에서 그녀는 공주의 신분으로 세수하거나 목욕할 때 만 손에 물을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난쟁이 집에서는 그들의 하녀가 되어 식사 준비를 하고 빨래, 집안 정리와 잡다한 일을 한다.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는 이 장면. 공주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림 형제가 여성은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남성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힘이 없는 존재로 그린 것은 불편하기 이를 때 없으나 공주는 자신의 삶에서 언제나 수동적인 인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난쟁이의 만류에도 비록 실패했으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욕망했다. 왕자가 공주의 시체가 있는 유리관을 옮길 때, 흔들림으로 목에 걸린 사과를 토해낸 공주는 직접 유리관 문을 열고 나온다. 공주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준비가 된 여성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대목은 공주가 왕자와 상황을 잘 이용한 듯 해석하기도 한다.
결말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왕족이라는 최고 신분의 여성도 대를 잇는 도구로 묘사하고 여성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조차 보호받는 존재,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무의식의 편견을 심어주는 흐름, 멋진 남성이 와서 구해주지 않으면 옹색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외모가 여성 정체성의 전부인 것으로 치부하는 전개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일 테고, 몇 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을 보면 씁쓸하다. 그러나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백설 공주는 자기 결정권을 갖고 최선을 다한 멋진 주인공이다.
당신에게 절대 진리의 거울이 있다면 어떤 물음을 하고 싶은가, 진리만을 말하는 거울을 두고 고작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지 묻기를 원하는가. 만약 내게 영광스러운 거울이 있다면 진정한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거니?”이렇게 묻고 싶다. 그리고 우주 최고의 진리만을 말하는 거울을 갖고 있으면서도 겨우 질투와 복수의 가치로만 사용한 새엄마의 어리석음을 마음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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