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독서광 김득신
조선의 독서광 김득신
  • 박소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19.09.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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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소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박소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어느새 가을이 코앞이다. 가을 하면 바로 `독서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UN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란다. 하루에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 10명 중에 1명도 안 된다는 통계치도 있다. 물론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점점 독서량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현상이라지만, 조금은 씁쓸한 기분은 감출 수 없다.

그런데 조선시대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독서광의 흔적이 우리 지역에 남아 있다. 바로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다. 김득신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를 이끈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 관련유적은 괴산 취묵당(도 문화재자료 제61호)과 증평 김득신 묘소(도 기념물 제160호)가 남아 있다.

김득신은 태어날 때부터 독서광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 천연두를 앓았던 탓에 천자문을 10살이 넘어서야 익힐 정도로 머리가 나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더는 공부를 가르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였으나, 김득신의 아버지는 오히려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아들의 대견함을 칭찬하였다. 또한, 공부의 목적이 과거 급제가 아니라 참된 인격을 수양하는 데 있다는 것을 꾸준히 가르쳤다. 이런 아버지의 믿음이 있었기에 김득신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 속에는 아이들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부모들이 등장하였다. 또 어느 방송에서는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수십 가지의 사교육을 시키면서도 어딘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부모들이 등장한다.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남들보다 뒤처지면 불안하기 마련인데, 요즘 부모들과는 상반되게 김득신의 아버지는 대기만성의 부성애로 그가 스스로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독서광 김득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득신이 1만 번 이상 읽은 책은 36권에 달했으며, 특히 가장 좋아한 『사기열전』 중 「백이전(伯夷傳)」은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책을 반복해서 읽은 김득신은 결국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수많은 시를 남긴 문인이 될 수 있었다.

훗날 김득신이 자신의 묘비에 적은 말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음의 울림을 준다.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고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도 없겠지만, 마침내 성취한 게 있었으니, 모든 것은 노력하는데 달려 있다”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김득신은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래서 더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달 초에 김득신의 후손들이 김득신이 남긴 원고를 모아 편집한 『백곡집』 초고본을 비롯한 김득신 선생과 관련된 유물을 증평군에 기증했다. 이 유물은 10월에 개관되는 김득신 문학관에 전시된다고 한다.

완연한 가을 10월에는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손에 들고 김득신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겸 쉬어가는 여유를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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