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사랑하고 즐긴 지 어언 반세기가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은 물론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동료들과 틈틈이 탁구를 쳤고 은퇴 후에도 동네 사설탁구장에서 즐탁(즐기는 탁구)을 하고 있으니까요.
한때 골프에 미쳐서 탁구를 소홀히 한 적이 있지만 저비용 고효율에 사계절 전천후 운동인 탁구의 장점과 매력이 좋아서입니다.
탁구를 치다보면 탁구가 인생 같고 인생이 탁구 같아 `탁구를 치며'라는 연작시 10편을 써서 제 두 번째 시집 `행복 모자이크'에 싣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여 제 시를 곁들인 탁구와 인생에 단상들을 몇 통 실어 보내오니 일람하면 좋겠습니다.
`작다고/ 가볍다고/ 얕보면 안 돼/ 힘으로 돈으로/ 권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지/ 어르고 달래고/ 쓰다듬으며/ 온 정성을 쏟아야 해/ 한눈팔지 마/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연적이 있잖아/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두 눈 부릅뜨고/ 한껏 사는 거야'
`탁구를 치며 1'입니다.
아시다시피 탁구는 현행 스포츠종목 중에서 가장 작고(지름 3.72~3.82cm) 가장 가벼운(2.40~2.53g) 공을 녹색테이블 위에서 라켓으로 주고받는 운동입니다.
탁구공이 그렇게 작고 가볍지만 회전수도 가장 많고(100회/1초), 타구 때 공의 속도도 무척 빨라(상대 코트 도달 시간 0.2초) 결코 만만하게 볼 운동이 아닙니다.
내공이 깊을수록 구질이 까다롭고 빠르고 강해 많은 훈련과 집중력을 요하는 운동이니까요.
그래요. 고수를 만나면 한 수 배워서 좋고, 맞수를 만나면 팽팽해서 좋고, 하수를 만나면 가르쳐주는 재미도 있어 탁구인을 만나면 이래저래 반갑고 즐겁지요.
한겨울에도 상의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량도 많아서 탁구공이 작다고 가볍다고 얕보면 큰코다칩니다.
폼이 엉성하다고, 어리다고, 늙었다고, 가냘픈 여자라고, 장애인이라고 얕보거나 만만히 보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죠.
폼이 엉성해 보이는데 막상 붙어보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구질과 경기력을 갖고 있어 당황할 때가 있고, 가냘프기 그지없는 여자인데 송곳같이 날카롭고 매서운 공격력을 갖고 있어 쩔쩔맬 때가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힘과 돈과 권력으론 결코 탁구의 달인이 될 수 없습니다.
탁구를 잘 치려면 사랑하는 이에게 하듯 어르고 달래고 쓰다듬으며 온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한눈팔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한눈팔다간 상대에게 덜미를 잡힐 수 있고, 연적에게 연인을 빼앗길 수 있으니까요. 어디로 튈지, 어디로 처박힐지 모르는 게 탁구공입니다. 상대의 움직임과 탁구공을 예의주시하고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맞받아쳐야 합니다.
`책임을/ 떠넘기지 마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 오는 공이 좋아야/ 가는 공도 좋은 법/ 허물을/ 탓하지 마라/ 아무리 집중해도/ 실수는 있기 마련/ 완벽한 인간 없듯/ 완벽한 삶도 없는 법/ 스코어에/ 연연하지 마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맞춰가며 사는 거지/ 어울리며 사는 거지'
`탁구를 치며 2'입니다.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는 핑퐁이어야 합니다. 인생살이가 그러하듯 탁구를 치다보면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 고운 공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내가 잘하면 네 덕분이고, 네가 못하면 내 탓으로 돌리는 이는 된 사람이고 즐탁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스코어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겼다고 우쭐할 것도, 졌다고 풀죽을 것도 없습니다.
승패가 행복지수를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부와 지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니 즐탁하면 그걸로 족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탁구공처럼 둥글둥글 살아야 합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웃는 탁구, 자족하는 탁구가 최고의 탁구입니다.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