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08.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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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떼 지어 날아간다. 어찌 저리 자유로운 영혼인지 신기하다. 아무리 높은 담과 궂은 날씨여도 상관을 않는다. 경계의 차이를 아무런 불편 없이 드나드는 새들의 생태가 부러운 시간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경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옆집과는 벽돌담을 사이에 두고 있다. 집을 건축할 때부터 지녔으니 담장에는 세월만큼 이끼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단독주택의 특징이지만 서로 경계가 오롯하다. 그러나 가끔은 열린 창문 사이로 본의 아니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말소리조차 귓전에 가까우며 무슨 요리를 하는지조차 코끝을 자극해오는 것들이다. 이렇듯 가로막힌 담사이로 넘나드는 미미한 사건들은 평범하게 보일지언정 긴한 이웃의 관계가 되어준다.

담이라면 아련한 추억이 묻어온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살 때의 풍경들이다. 집집이 둘러진 나지막한 돌담들은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들려주고 있었다. 펄럭이는 빨랫줄에서조차 그날의 온기를 전하기에 충분했다. 여름부터 시작되는 호박넝쿨은 넘치는 인정을 주체 못하고 아우성치며 대화를 이어가게 하였다. 누구네 감이 익어 가는지, 누구네 장독대에 어떤 꽃이 피는지, 아름다운 그림은 지금도 어렴풋하다.

한 때는 그것이 삶 속의 진화였던가. 돌이켜보니 세월의 흐름이라는 걸 알았다. 돌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 벽돌담으로 자리를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인정을 나눌 만큼의 담장키는 이제 손이 닿지 못하도록 메마름의 형태가 높아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소통의 부재가 조금씩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정서가 문득 그리운 오늘이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이웃과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보이는 담과 보이지 않는 담을 공유해간다. 그것이 필요에 따라 있어야 할 곳과 없어야 할 곳에 적절히 자리해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이 아닌가. 우선 나부터 그렇다고 생각한다. 경계의 폭도 복잡하고 광범위해진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받아들여야 한다지만 그래도 서로 간에 경계를 두르는 담은 유익하고 화합할 수 있는 것들로 두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여전히 새들은 자유롭다.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날갯짓을 한껏하며 담장을 넘나든다. 우리 집 감나무도 옆집 담장을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그 틈 사이로 바람이 드나든다. 따로인 듯한 공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 든다면 남과 북의 경계이다. 세월이 쌓아놓은 비극의 장벽, 전 세계에서 유일한 동족 간의 장벽, 그곳에는 바람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한 맺힌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불통의 시대가 어서 사라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바람과 새의 영혼이 부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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