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여' 하지만 '중재' 안한다는 美…대화중재 해도 장기화 불가피
'관여' 하지만 '중재' 안한다는 美…대화중재 해도 장기화 불가피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9.08.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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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일 갈등 중재·조정에 관심없어"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답하지 말라"

日, 현상동결합의 제안에도 즉각거부

美, 효과없으면 곤란…추가 중재 난항

지소미아 압박카드, 美 움직일 수 있나

전문가 "美 적극 활용 방안 모색해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 가운데, 미국이 대화 중재 노력을 하더라도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도 양국 사이에서 추가 대화 중재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 고위당국자는 지난 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계기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3국이 만났다는 사실은 해법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중재나 조정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결정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관여하고 있지만, 한일 갈등과 관련해서 직접적이거나 적극적인 중재나 조정에는 나서고 있지는 않고 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그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1일(현지시간) 방콕에서 태국 외교장관과 양자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이 갈등을 완화할 방법을 찾길 바란다"면서도, 직접적인 중재나 조정과는 거리를 뒀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점차 심화된 한일 간 갈등 국면에서부터 어느 한 쪽 편에도 서지 않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마크 내퍼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난 4월 방한 당시 '아산 플래넘 2019' 한미동맹 세션에서 한일관계와 관련해 질문을 받고 "젊은 외교관 시절, 한국과 일본 관계에 대해 답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험에서 비롯한 농담에 가까운 발언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에 각각 동맹을 맺고 있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미국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으로도 읽혔다.



당시 내퍼 부차관보는 "미국은 건설적인, 생산적인 관계가 한일 간에 있기를 기대한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은 일본과 한국이 해결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후에 상황은 더 악화됐다. 일본은 지난달 초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일본산 소재·부품에 대해 수출 통제 강화 조치를 한데 이어, 지난 2일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나서며 추가적인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미국은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동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일정기간 한일 양측이 외교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한 이른바 '스탠드 스틸'(standstill agreement)로 불리는 '현상동결합의'를 제안했지만, 일본은 이조차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경제 보복조치 사이에서 한일 간 입장이 첨예하고, ARF에서도 한일이 간극만 확인한 상황에서 미국이 앞으로도 추가적인 중재안을 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섣불리 중재안을 내놨는데 한일 양쪽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외교적인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 역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한·일 갈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양국 간 냉각기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서 훨씬 더 외교적 협의 공간이 좁아진 건 일본 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냉각기가 분명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일본 외무성에서는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경제산업성의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수출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일본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내심에는 강제징용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렵게 만든 (강제징용 문제해결) 안을 놓고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이렇게 비우호적인 보복조치를 취한 상황"이라며 "이미 어려웠던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냉각기가 얼마나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예상 못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견은 있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방콕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GSOMIA 문제를 언급했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미국도 GSOMIA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도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아베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분석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상황악화를 막고 싶어 할 것"이라며 "스탠드스틸에 대해서도 지금도 (미국은) 내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 센터장은 그러면서 "우리가 미국의 관여를 요청한 것도 시기적으로 한 달도 안 됐을 것이다. 시간은 필요할 거 같지만 우리 혼자 힘으로 설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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