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있는 포장석
틈이 있는 포장석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19.07.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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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두두두두~, 퉁퉁퉁-퉁, 여느 때와 달리 아침의 청아한 새소리가 아닌 땅을 다지는 요란한 소리가 집안을 들썩인다. 피곤함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듣는 새소리는 기분 좋은 알람이었는데, 난데없이 기계의 굉음과 불만이 가득한 사람의 큰소리가 불쾌한 하루를 예견한다.

소리의 출처는 기존의 보도블록을 들어내고 새로운 블록을 까는 공사장 기계다. 모래를 깔고 다지는 소리였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이전의 소음은 어린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맞추어 중장비들이 본격적으로 투입돼 더욱 심해졌다. 굴삭기에 지게차, 대형덤프트럭까지 엄청난 공사가 벌어지는 듯했다. 거기에 처음 공사장에 투입된 인력인지 몇 사람은 반복되는 짜증 섞인 고성을 더했다.

며칠 이어지던 공사의 소음은 얼마 안 가 멈췄다. 멀쩡한 블록을 들어내는 작업은 뭐였을까? 무슨 공사였는지 궁금해 졌다. 공사가 진행된 곳을 따라 거닐었다. 경계석과 블록의 레벨이 들쑥날쑥하고 빈공간을 채우지 않아 듬성듬성 기초바닥이 보이는가 싶더니, 중간중간 경계석에 볼트가 돌출되어 있고, 기존 블록과 폐자재는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무슨 공사가 이럴까 싶어, 공사안내를 알리는 입간판을 찾았다. 『000 예술의 거리 가로환경 개선사업』 `동구밖가꾸기', `힐링포켓파크 조성', `달빛꿈나무길 조성', `옛이야기길 조성'에 `특수블럭'과 `아스콘을 포장'하고 바닥면을 도색하는 작업, 옹벽공사와 통석의자 등을 배치하는 사업이었다.

아! 예술의 거리였구나? 회색을 기본으로 간혹 노란색 톤의 정사각 블록이 깔린, 여느 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획일화된 통일성(?) 있는 거리, 빗물이 튀겨 신발을 적시고 조그마한 풀이라도 자랄까 싶어 틈 하나 주지 않으려는 완벽한 거리를 조성하려는 공사였던 거였다.

그 조그마한 틈조차 용서할 수 없어 규사로 성의없게 마무리한 블록 위를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집으로 향했다. 아스콘 포장길을 거쳐 작은 골목길로 발을 옮겼다. 블록 사이에 촘촘히 녹색 물감으로 지그재그 선을 그어대듯 이끼가 비집고 자라 자그마한 키를 자랑한다. 그 사이 비단풀도 나지막이 포복하듯 깔렸고, 그 밑으로 공벌레가 놀다가 인기척에 놀란 듯이 몸을 돌돌 말았다. 그러고는 데구루루 내 발끝으로 굴러 멈췄다. 아 푹신푹신한 이 감촉.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발 바로 밑의 지면을 느낀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블록을 드러냈다. 흙을 한 차 받고 구들장으로 쓰던 판석을 깔았다. 판석과 판석 사이는 5~10센티미터 정도씩 차이를 두어 깔았다. 이끼와 잔디가 자라 사이를 채워줄 것을 감안한 것이다. 그 사이는 단순히 식물이 자라는 틈새가 아니라 물이 스며들고 지렁이의 출입처고, 쥐며느리와 공벌레의 은신처이자 놀이터였다. 가끔은 이름 모를 벌레들이 출몰하고 개미가 마실가는 조금은 너른 골목이다. 그 틈새는 자연과 접촉하는 공간이다.

밑면이 고르지 않은 판석은 처음엔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들썩들썩한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아 자리를 잡았다. 비가 오고 틈새로 흙이 자연스럽게 메꿔지고 식물의 뿌리가 자라면서 뛰어도 움직이지 않는 포장석이 되었다. 자연에 의해 자연적으로 완전하게 시공이 된 것이다.

주변에 수로가 될 만한 골을 파지 않았다. 집중호우에 대비해 물이 나갈 만한 곳을 염두에 두었으나 돌을 듬성듬성 깔고 잔디를 깔고 지면을 그대로 노출시켜니 물이 고이거나 패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밤에 산책하면서 보이던 쥐며느리, 돈벌레가 없는 새로운 예술의 거리를 거닌다. 어릴 적 논둑을 지나 조금 넓어진 흙길을 거닐며 앙증맞게 피어난 풀꽃을 떠올리니 복잡미묘하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표면은 씻어내기 쉽다. 그렇지만, 이 같은 표면은 사람, 보행로 그리고 빗물이나 식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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