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축제
한 여름밤의 축제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06.17 2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잘 싸웠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전혀 아쉬워할 일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새 역사를 썼다. 한국의 20세 이하(U-20) 남자 축구 대표팀이 16일 폴란드에서 폐막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성인 대표팀을 포함해 한국 남자 축구가 피파 주관 국제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승까지 오는 과정을 되새기면 드라마 같은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에 1대0으로 패한 한국 대표팀은 졸지에 16강 진출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전력을 가다듬은 대표팀은 남아공전에서 심기일전, 1대0으로 첫 승점을 따낸 데 이어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남미 최강인 아르헨티나를 2대1로 침몰시키며 조 2위로 16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어 만난 상대는 영원한 맞수 일본. 출전 국가 중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를 만난 대표팀은 뛰어난 조직력을 갖춘 일본에 크게 고전했다. 전반전 골 점유일이 무려 72대 28일 정도로 끌려다닌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 후반부터 정정용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선수 교체를 통해 측면 공격을 강화하며 반전을 노린 대표팀은 경기 막판 6분을 남기고 오세훈의 헤딩 슛 한 방으로 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다.

이어 만난 아프리카의 강호 세네갈과의 8강전은 더 드라마 같았다. 피파가 이번 대회 최고의 명승부로 꼽을 만큼 극적인 승부였다. 터진 골만 무려 6골. 그러나 전후반 90분도 모자라 연장전 30분까지 치른 양팀은 결국 3대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아뿔사. 한국은 1, 2번 키커가 모두 실축해 패배를 기정사실화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메이저 축구 대회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선축인 팀이 1, 2번 키커가 실축하고 경기를 뒤집을 확률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믿어지지 않는 반전이 시작됐다. 상대팀의 두 번째 키커가 골을 골대 위로 날린 뒤 우리의 3,4번째 키커가 모두 성공한 반면 세네갈의 네 번째 키커의 골을 이광연이 막아냈다. 이어 우리의 마지막 키커 오세훈이 성공하며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다. 팽팽한 승부는 이번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힌 이강인의 재치있는 패스 한 방으로 갈렸다. 상대팀이 전열을 채 갖추기 전에 프리킥을 멋진 스루패스로 연결해 최준의 결승골을 이끌어 냈다. 사상 최초로 피파 주관의 메이저 축구 대회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16일 새벽 운명의 결승전, 온 국민의 성원 속에 선전한 우리 대표팀. 아쉽게 패했지만 이미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불굴의 투지와 믿음으로 혼연일체가 돼 22일간 일곱 게임을 치르며 우리 국민을 한여름밤의 달콤한 꿈에 젖게 한 선수들과 스태프들. 17일 보무당당하게 귀국한 선수들에게 포상금은 물론 병역까지 면제시켜줘야 한다는 `즐거운 논란'이 시작됐다. 정치가 실종되고 불황 속에 민생은 나아질 것 없던 답답한 6월. 우리 청소년 축구 대표의 선전이 그나마 모두를 웃게 하고 `하면 된다'는 희망을 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