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으로 인생 2막 “행복하다”
가위손으로 인생 2막 “행복하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5.14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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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날 특별 인터뷰 / 김사성 전 충북여고 교장
38년 교직 은퇴후 학원서 기술 배워
복지시설 4곳 돌며 6년째 이발봉사
쿠폰 선물에 “아들 번 돈 어떻게 쓰나”
무료이발 긴줄 선 아버지 보며 결심

 

한때 교장선생님으로 불렸던 김사성 전 충북여고 교장(69). 그는 현재 이발사의 삶을 살고 있다. 퇴직 후 6년간 그의 가위 손을 스쳐간 이들만 1500여명에 이른다. 이발 봉사자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김 전 교장은 하루해가 짧다. 취미생활을 하며 평화로운 노후의 삶을 꿈꿀 만도 한 데 그는 이발 봉사자로 나섰다.

이미용 봉사모임인 예사랑 미용봉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전 교장은 현재 청주종합복지관, 충북현양복지재단 은빛양로원과 성덕원, 골든 요양원 등 4곳의 시설을 돌며 지역 어르신들의 머리 손질을 하고 있다.

김 전 교장은 지난 2012년 2월 말 38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퇴직 후의 삶을 고민했던 그는 이발 봉사자의 삶을 걷기 위해 그해 겨울 전문 학원에 등록해 이미용 기술을 배웠고 2013년부터 본격적인 가위 손의 삶을 살았다.

그가 이발 봉사를 결심한 이유는 작고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번듯한 교사가 된 후 자랑스럽게 그는 회당 5000원 하는 이발소 쿠폰을 20장 준비해 아버지에게 선물로 건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쿠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궁금해 이발소를 찾아가서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자식이 힘들게 번 돈을 어떻게 쓸 수 있느냐며 쿠폰 1장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환불해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일요일 새벽에 나가시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고, 이발소를 운영하는 부부가 이발 봉사하는 장소의 긴 줄 뒤에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김 전 교장은 “아들이 번 돈이 아까워 무료로 이발해주는 긴 줄에 오랜 시간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며 “교단에서 물러나면 이발 봉사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38년간 교단에 섰던 그에게도 스승의 날이면 기억나는 은사가 있다.

음성 대소초 6학년 담임이었던 신기철 교사다. 객지로 나가 공부하기보다 시골에서 정착해 농사짓기를 원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음성 관내 중학교로 원서를 썼던 그의 재능을 담임 선생님은 안타까워했다. 청주 학교로 진학을 원했던 담임선생님은 제자를 위해 원서 마감 전날 밤 사진을 찍는 등 부랴부랴 준비해 원서를 접수시켜 합격시켰다.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스승은 동국대학교에서 퇴직한 고 최세화 박사다.

김 전 교장은 대학 은사인 최 박사가 대전으로 내려온 1989년부터 작고한 2017년까지 28년간 매년 스승의 날 찾아뵈었다.

지난해에는 사모님을 만나 세상 떠난 은사님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스승들이 그러했든 김 전 교장도 제자를 위한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있다.

지난겨울 그는 충북여고 2회 졸업생 중 공직에서 물러나는 제자를 위해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직접 요리를 해 먹였다.

김사성 전 교장은 “지금은 찾아뵐 부모도, 스승도 모두 세상을 떠나 마음이 허전하다”며 “매달 부모를 찾는 심정으로 이발 봉사를 하고 있는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금란기자
silk8015@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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