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용 지수
개천용 지수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2.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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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아니다. 가난은 죄다. 가난하면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다.

가난이 굴레가 되고 팔자가 되는 세상에선 없는 게 죄가 되나 보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개천용 지수가 등장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엔 그저 열심히 일했다. 허리 졸라매면 큰 부자는 아니어도 작은 부자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한번 부자는 평생 누리고, 없는 자는 짓눌리는 삶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드라마 `SKY 캐슬'이 현실이었다. 서울대 경제학부 주병기 교수가 최근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부모의 학력·소득 수준과 자녀의 성공(수능 고득점, 고소득 획득) 여부를 측정한 `개천용 지수(기회불평등지수)'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 학력이 가장 낮은 집단(중졸 이하) 출신자가 소득 상위 10%에 진입하지 못할 확률은 2000년대 초반 20% 안팎에서 2013년에는 30% 안팎으로 올랐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부모 학력·소득과 수능 성적을 대입해 구한 지수는 부모 학력·소득이 낮을수록 고득점 실패 확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어영역은 지수가 0.7로 10명 중 기회 불평등으로 인해 7명이 고득점 획득에 실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학은 0.6, 국어가 0.5다. 특히 외국어의 개천용지수가 높은 이유는 저학력·저소득 가구일수록 해외 경험이나 외국어에 노출되는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의 문턱이 낮아지고 어학연수 떠나는 대학생이 줄을 이어도 다 남의 얘기다.

주 교수는 개천용 지수를 개발한 이유에 대해 “공정한 기회평등은 동일한 능력과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무관하게 동일한 성취를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때 성립된다”며 “이 같은 기회평등이 우리 사회에 부족하다는 것을 기회불평등지수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 연구 자료를 보면 2014년 서울대 합격률은 강남구가 강북구의 21배에 달했다. 고가의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동네 학생들이 서울대 합격률이 높다는 연구자료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만 19세 이상 일반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행복지표 개발 연구'에서 응답자 4명 중 1명은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거나 불안하다'고 답했다.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소득, 고용, 주거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비(非)강남 지역 거주자의 현재 행복감은 강남 3구 거주자보다 낮았다.

현실적으로 지배계층 피라미드에서 상층에 가려면 결국 부모를 잘 만나는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교육 불균형 해소를 외치며 취약계층 대학생을 대상으로 파란 사다리 사업을 펼치고, 공정한 대입 전형을 위해 절대평가를 확대하겠다고 나서도 국민이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다리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오를 수 있다. 밑에서 잡아주는 부모 없이 혼자서 사다리를 오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시청자들은 올바른 교육관과 바른말만 하는 이수임보다 학벌을 통해 욕망을 채우려는 한서진과 부정한 방법으로 욕망을 채워주려는 김주영에게 열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입시전쟁에서 교육부가 매년 내놓는 대입 정책과 교육정책이 샌님 소리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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