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9.02.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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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데모크리토스가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단지 만물이 나눌 수 없는 알갱이로 되어 있다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물의 성질, 예컨대 빨갛거나 노랗고, 거칠거나 매끄럽고, 단단하거나 물렁물렁한 다양한 성질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의 배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자는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목적 없는 존재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도 무슨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이 원자론적인 사상이 생물학에서 발현된 것이 바로 멘델의 유전 이론이 아닌가 생각한다. 멘델이 말한 유전자는 그 당시로는 실체가 모호했지만, 생명의 `원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분자생물학이 발전하고 DNA의 구조가 밝혀짐으로써 유전자는 물질적인 실체에 가깝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유한하지만, 유전자는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랑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고, 출세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도 알고 보면 유전자가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인간이라는 몸을 부리는 중이다. 우리는 내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기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마치 유전자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진화론의 가장 핵심은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도킨스가 이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서 마치 목적이 있는 것처럼 말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그 중간도 아니다. 유전자는 아무 생각이 없는 존재다. 사실, 유전자라는 말도 상당히 모호하다. 일반인들은 유전자와 DNA를 구별하지 않거나 못할 수 있다. DNA가 생물에서 유전의 핵심 단위임은 틀림없지만 DNA가 바로 유전자인 것도 아니다. 하나의 DNA 안에 수많은 유전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실체를 분자적으로 무엇이라고 한 가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전자는 세대를 통해서 변하지 않고 전달되는 물질의 단위임은 틀림없다. 이 물질인 유전자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원자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유전자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세상에는 그 무엇도 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자연과학이 서 있는 바탕이다. 목적이라는 것이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유전자는 절대로 이기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유전자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목적이 없는 행동이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기적이라는 말은 자기에게 유익하게 하는 행동을 말할 것이다. 여기서 자기는 바로 유전자를 의미한다.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행동은 분명 이타적 행동이다. 하지만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꼭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애국자의 몸을 이루는 유전자는 그 애국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에게도 있고, 그 친척에게도 있고,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퍼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애국자의 희생이 그 애국자 자신만 보면 분명 이타적이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이기적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 목적도 없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유전자가 살아남기에 적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는 원자들이 모여서 이 아름다운 우주가 되고 아무 목적도 없는 유전자로 된 인간이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럽다. 목적 없는 것들이 모여 목적이 있는 것보다 더 목적스러움을 만들어내는 것, 이보다 더 신비스러운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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