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 갔더니
마라도에 갔더니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2.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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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2019년 1월 10일은 나에겐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섬, 몹시 가보고 싶었던 섬 마라도(馬羅島)에 갔다 왔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리는 섬이니까요.

제주도를 이런저런 일로 10여 차례나 갔었지만, 갈 때마다 가봐야지 하고 벼르기만 했지 못 가봤거든요.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체질 때문에 그 좋다는 독도와 홍도도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포기해야했기에 마라도는 제겐 꿈의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라도가 송악산 여객선선착장에서 11㎣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고, 그 정도는 참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용기를 냈죠.

절친 부부들과 함께한 2박3일 제주도 여행길 첫날에, 그것도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트한 봉고차를 타고 쾌속질주 끝에 아슬아슬하게 마라도 가는 마지막 배를 타고 갔다 왔으니 감개무량합니다.

마라도는 동경 126˚16' 북위 33˚07'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섬입니다. 면적은 0.3㎢ 해안선의 길이는 4.2㎣이며 최고 해발이 39m밖에 되지 않은 거북등처럼 생긴 평평한 섬이었고요, 그 작은 섬에 50여 가구 120여 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살고 있더군요.

마라도는 원래 숲이 무성한 무인도였는데 1883년(고종 20) 대정에 살던 김 씨 일가가 대정 현감으로부터 개간 허가를 받아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후 나무 없는 갈대와 풀만 있는 민둥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거센 바람이 불고 때때로 태풍도 휩쓸고 가니 그럴 만도 합니다. 섬의 명칭도 원래는 마라섬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지형도에 마라도로 표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마라도 주민들은 여자들의 물질 외에 마땅한 생업수단이 없고, 농사를 지을 땅도 없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민박과 식당, 전동카트 대여업으로 생업을 유지합니다.

둘러보니 큰 등대뿐만 아니라 마라분교도 있고 성당과 교회도 있고 자장면과 짬뽕 파는 식당도 여러 곳 있어서 외로운 섬이지만 연간 6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결코 외롭지 않은 섬이었습니다. TV에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가 나와 유명세를 탄 바 있어 우리 일행도 여느 관광객처럼 눈길 가는 식당에 들러 반은 자장면 시키고 반은 짬뽕을 시켜서 둘 다 맛을 봤는데, 신선한 해물이 들어선지 감칠맛이 있었습니다. 마라도에 가면 꼭 맛봐야 하는 음식으로 자리 매김 될 만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국가입니다. 그 바다 위에 3400(유인도 467개)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고, 그런 섬 중에서 최동단에 독도가, 최서단에 격렬비열도가, 최남단에 마라도가 있어 해양영토를 넓히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섬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섬이지요.

특히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땅끝'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아름다운 경치와 다양한 해양생물과 보호가치가 있는 해양생태계 등이 있어 2000년에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근처에 가파도가 있어 육지에 사는 빚쟁이가 마라도에 와서 `여기까지 오면 빚을 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다'는 농을 했다기에 저도 이참에 조크를 합니다.

마라도에 갔더니 욕하지 말고 성내지 마라 합니다.

마라도에 갔더니 근심 걱정하지 마라 합니다. 교만하지 마라 합니다.

마라도에 갔더니 국토방위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합니다.

지금도 마라도엔 거센 바람이 붑니다. 풀이 납작 엎드릴 정도로 거세게 붑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침탈야욕의 바람이자 변고를 알리는 위기의 바람입니다.

마라도가 이릅니다. 정신 줄 놓지 말라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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