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면제와 광역교통청
예타면제와 광역교통청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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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보통의 국민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가 갑자기 커다란 화두가 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도입된 예타는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300억원 이상인 신규 SOC사업에 대해 정책적, 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확인 조사를 통해 사업성을 판단하는 `절차'다. 이 제도는 경제성 및 재원조달 방법 등을 사전에 검토해 선심성 사업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예타가 갑자기 화두가 된 까닭은 한마디로 `절차'를 생략한 `면제'결정에서 기인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29일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예타면제 사업 17건을 선정, 발표했다. 투입되는 전체 예산이 무려 61조 2510억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정부가 예타면제를 결정한 표면적 이유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경제 활성화, 그리고 지방분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일 것이다. 이에 대해 토건공화국의 부활,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난이 결코 가볍지 않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에서 비롯되는 결과가 정의로운 세상'은 물 건너갔다는 실망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받게 된 지방에서는 환영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찬사가 그치지 않는데, 그게 과연 지방의 절대 권력에 대한 민초들의 제대로 된 평가로 길이 남을 것인지는 역사가 말할 것이다.

기왕에 결정된 일이니, 토목건설을 통한 일시적인 경기부양이거나 광범위한 대륙을 향한 웅비의 족적이라는 찬사에 앞서 철저하게 따져볼 것은 따져볼 일이다.

충북의 예타면제 사업은 소위 `강호축'으로 상징되는 88km 구간의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으로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이런 천문학적 돈으로 시속 230km의 철도로 가속하고, 이를 유라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솔깃하다.

그러나 이 같은 꿈이 지역에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도를 경계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230km/h 속도의 열차가 88km 구간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하는 사이에 충북을 통과하는 호사를 누리게 될 것인데, 청주와 충주, 제천 정도만 역세권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충북은 그저 열차 차창 밖의 먼 풍경으로만 남아 있을 수 있다. 가속의 편리함이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제어시킬 수 있는 교통 결절점의 구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광역교통청」의 설치, 운영을 그 방법의 하나로 제안한다.

청주를 중심으로 대전과 세종시, 그리고 공주와 천안, 진천혁신도시를 포함하는 광역교통망을 통해 선(線)과 빠름을 면(面)과 멈춤이 이루어지는 집합공간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인접도시 간 통합 교통시스템의 운영이 필요하며 이를 총괄할 수 있는 협력기구로, 「광역교통청」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충청권 중핵의 지방도시별 특성과 장점에 맞는 압축형 역세권의 확보를 통해 역사와 문화, 행정, 의료, 첨단산업 및 과학기술 등의 기능을 전략적으로 특화시키면서 여럿의 속도의 선이 집중되는 혁신적 공간 구조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가속화 되는 철도와 도로가 빨대효과(straw effect)의 원인이 되어 지방도시를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소멸의 위기로 내몰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춘천은 ITX청춘열차의 개통 이후 서울로부터의 통학이 가능해지면서 대학 주변 상가의 공동화에 시달리고 있으며, SRT가 개통된 이후 수도권의 빅5병원(서울아산병원·연세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의 건강보험 급여비는 12.2% 증가했다. <마강래.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에서 인용> 세종시의 BRT(Bus Rapid Transit. 간선급행버스) 연간 이용객이 629만명, 광역 노선버스를 포함하면 지난해 1000만명이 넘었다는 최근의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트램과 BRT가 느릿느릿 운행되는 강호축의 중핵도시. 모든 아름다운 조형의 기본인 점·선·면·형·색이 어우러지는 토건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야 삶의 질도 나아진다. 머나먼 강호축은 거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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