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젊은 날의 초상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1.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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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영하의 온도에 찬바람이 얹어져 한파를 몰고 왔다.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어야 할 추위에 그녀가 우체국 앞을 지나가고 있다. 웅크린 몸으로 느린 게걸음을 하고 간다. 집에서부터 거리로는 30분은 걸렸을 시간이다.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종종걸음이다. 볼 때마다 안쓰럽다.

그녀에게도 화려했던 날이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모양새가 귀부인이었다. 명품가방에 유명메이커인 옷을 입고 몸에는 값나가는 액세서리로 치장하여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멋쟁이였다. 고급 차를 끌고 취미로 골프도 했다. 시골에 없는 시지역으로 수영장을 다니고 우아하게 사는 여인이어서 부러웠다. 남편이 잘 나가는 회사의 기술장으로 남들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넉넉한 살림으로 은행의 여러 군데에 예금해 놓았고 내가 다니는 우체국에도 고액의 예금을 한 고객이었다.

한순간에 노인의 모습으로 변한 데는 아들 때문이다. 철없는 아들을 한탄하며 속상한 마음을 내게도 털어놓은 적이 많다. 남편이 살아 계실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던 행복한 일상이었다. 어쩌면 이때까지만 해도 나이가 덜 차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아들의 회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의 나이 서른이 되면서 엄마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발동을 걸자 점점 가속도가 붙어 액수가 커지는 모양이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자식을 어미의 마음이 외면하지 못했다. 점점 곳간이 텅텅 비어갔다. 통장의 잔고는 0이 되고 몇 채 되던 아파트가 넘어갔다. 어느 날의 손가락에 알 반지가 달아나고 금목걸이가 사라져갔다. 거기에 살고 있는 집마저도 남의 것이 되었다.

한 인생이 동전의 앞뒷면을 뒤집듯 바뀐 데 걸린 시간은 십 년밖에 안 된다. 그 시간을 시달리는 동안 통통하여 보기 좋던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볼은 쏙 들어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되었다. 상한 속이 머리에도 침입해 정신도 희미해졌고 몸도 어눌해졌다. 끝내 노숙자 신세가 된 그녀다. 불쌍한 마음에서인지 오랫동안 혼자 살던 동네홀아비가 데리고 가 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자식농사를 잘 지어야 노후가 편안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노인이 되기엔 이른 나이다. 육십 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초췌해진 모습에서 해골꽃을 떠올린다. 애처로운 그녀가 세월을 거슬러 금어초로 피어난다. 이 꽃은 입을 뻐끔거리며 헤엄치는 금붕어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긴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조롱조롱 매달린다. 밑에서 위로 차례로 피어올라 가 어느 꽃보다도 화사하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어 저마다 매력을 발산한다. 여린 꽃잎은 청초하여 신부의 부케로 어울리고 화려한 꽃꽂이에도 빠지지 않는 사랑스러운 꽃이다.

화단에서 아름다움을 힘껏 뽐내고 할 일을 다 끝내고 나서 져버리는 과정이 초라하다. 그냥 말라가는 것도 아니고 해골모양이 된다. 씨방이 터지면서 퀭한 두 눈이 생기고 벌어진 입이 만들어진다. 시들기 전의 그 아름다움이 있었다고는 지켜본 사람만이 믿을 것 같다.

환하게 피어날 때는 소리치도록 예쁜 꽃이다. 씨앗들을 아프게 품으면서 아름답던 자태는 온데간데없다. 하물며 괴이한 몰골을 한 해골꽃으로 남겨진다. 한철 흐드러지게 피어 으스대던 금어초가 스러지고 있다. 그녀의 젊은 날의 초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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