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행도리(櫻杏桃梨)
앵행도리(櫻杏桃梨)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1.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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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1월 초순부터 학교가 시끌벅적하다. 신입생 예비소집일이라 학부모들이 취학통지서를 제출하고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준비를 하는 날이다. 합기도장과 태권도장에서는 담벼락에 신입생 유치를 위해 현수막을 내걸고 선물을 나눠주는 등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날 행복씨앗교인 성화초는 1학년 생활에 대한 학부모 설명회를 해주었다. 엄마를 따라서 학교를 구경 온 예비 신입생들은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며 학교 구경을 한 후 엄마들이 학교설명을 듣는 동안 강당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였다.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떨리겠지만 특히 자녀를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시키는 순간은 유치원과는 다른 긴장감이 있다. 유치원생은 유아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돌봐 주려니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독립된 개체로서 경쟁 사회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공부는 잘 따라갈지 친구들과는 잘 어울릴지, 선생님 눈 밖에 나지는 않을지 등등 모든 것이 염려스럽다. 객관적인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는 다 비슷한데 부모는 작은 차이점에도 각을 세우고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꼴을 못 참는다. 그러나 나중에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각자의 모습으로 잘살고 있을 텐데 말이다.

충북교육청 2019년 사자성어는 앵행도리(櫻杏桃梨)이다. 이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춘풍(春風)이라는 시의 春風先發苑中梅(춘풍선발원중매)/ 櫻杏桃梨次第開(앵행도리차제개)에서 따왔다. `봄바람에 먼저 핀 앞뜰 매화꽃/ 앵두, 살구, 복사, 배꽃 이어 필 테지'란 뜻이다.

지금까지는 엄동설한을 뚫고 일찍 피는 매화만 주목한 사회였으나, 이제는 타고난 기질대로 성장하여 저마다 독특한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주시할 때이다. 이른 봄 매화가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 후 곧이어 비슷한 시기에 앵두, 살구, 복숭아, 배나무에 차례로 꽃이 피면 완연한 봄임을 알 수 있다. 이 다섯 나무의 꽃은 잎이 5장으로 둥근 모양이며 가운데 수술이 나 있고 색상도 연분홍색이나 흰색으로 비슷하게 피어서 얼핏 보면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잠시 피웠던 꽃이 진 후 모두 초록으로 무장하고 열매를 감추고 있어 그저 나무로만 보일 뿐 열매가 익기 전까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겉모습만 비슷할 뿐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초여름에는 앵두와 매실, 살구가 익는다. 한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배가 익는다. 각기의 과일들은 맛과 향과 영양성분이 달라서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할 수가 없다.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나름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인생 나무에 견주어보면 꽃이다. 이 꽃이 어떤 열매를 언제 맺게 될지 보살피고 기다리는 것이 교육공동체의 일이다. 길고도 지루한 초록 열매의 시간을 견뎌야 탐스러운 과실을 얻듯 아이들이 저마다 소질을 찾아내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자. 분재처럼 보여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키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타고난 모양으로 자라게 해주자. 남이 해주는 칭찬에 기뻐하는 것보단 스스로의 만족감에 자존감이 올라가는 아이로 성장하게 해주자.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앞만 보고 달려와 경제성장 속도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선진국 배열에 들어섰지만, 내면화된 경쟁의식으로 자신의 행복보다는 남과 견주어 비교하는 습성이 남아있어 행복지수가 높지 않다. 이제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모두의 행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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