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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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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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차선일여(車禪一如)
따스한 봄날 꽃향기가 산들바람에 실려서 창으로 들어온다.

얼마전 볼일이 있어 시내를 나가는 길에 앞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이런 경계는 처음 당했지만 차분하게 대처하면서 나의 공부를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차는 3만 4000가지의 조합이라고 한다. 하나 둘 해체하고 나면 과연 무엇일까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공(空)이라고 하며, 부품들만 가지고 차라고 할 수 없으니 여러 인연들이 모여 비로소 차가 된다. 그래서 연기 즉 공(空)이요, 공이 즉 연기다.

앞으로 얼마나 더 탈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알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고 정해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수행하는 것이 결코 둘이 아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이 부처라는 대신심이 성취되었는지 항상 점검을 해서 마음밖으로 찾아 나서면 안 되듯이 자동차도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점검을 해야 한다.

이것 저것 점검을 하고 나서 함께 몸상태도 점검하다 보면, 보고 듣고 살피는 경계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는 한 물건이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화두 참구하는 사람은, 목전에 현존하는 이것을 의심해서 화두를 챙겨야지 화두를 따로 챙기게 되면 활구가 되지 못해서 운전과 수행이 하나 되지 못하고, 운전하면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쉽게 포기해 버린다.

운전할 때는 주인공이 운전하는데 있기 때문에 이 놈이 졸거나 망상을 피우면 바로 알아서 정신을 차리면 운전과 하나 되지만, 운전 따로 염불 따로 하면 무기력해져서 쉽게 졸음이 온다. 염불로써 망상을 끊어버리면 집중의 효과는 조금 있어도 다시 졸음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서 몸을 이리 저리 흔들어 주면 움직이는 곳마다 마음이 나타나니 다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것을 붙잡고 나아가야 하며, 다시 차에 오르면 운전하는데 금방 주인공이 나타난다.

처음 운전이 쉽지 않았지만 자꾸 하다 보니까 몸에 배었듯이 공부도 항상 챙기면 점차로 쉬워진다.

운전자가 도로 사정에 따라서 속도를 조절하듯이 정과 혜를 닦아야 한다.

지혜가 지나치면 과속하는 것과 같고 너무 느리게 운전을 하면 정에 치우쳐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선(禪) 공부에서는 이것을 정혜쌍수(定慧雙修·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일)라 하고, 천태에서는 지관겸수(止觀兼修·관법을 수련하는 수련법)라 한다.

산들산들 봄바람을 따라서 포행하듯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공부를 챙기고 모처럼 친한 친구라도 만나면 좋은 찻집에 가서 차 한잔 하면서 공부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 차를 마시고 차를 운전하는 것이 본래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정해년 한해는 항상 넉넉하게, 항상 밝게, 항상 베푸는 그런 삶을 향해 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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