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할 것
잊어야 할 것
  • 신상호 청주시 청원구 세무과 주무관
  • 승인 2018.11.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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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어느 시인은 나무의 일생을 `옷을 갈아입는 것'에 빗댔다. 나무는 말라버린 나뭇잎을 계속 붙잡으려 하지 않고 기한이 다한 것들, 내 안에 있기에는 좋지 않은 것들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버린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듯이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인 것이다.

한자 `잊을 망(忘)'자를 쓰는 `망년회'의 시즌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요즘은 `송년 모임', `송년회'로 순화해서 사용하지만 우린 잊어버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간혹 `망년회'라고 부르며 어떤 행동도 용인된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 흥청망청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다.

힘들었던 일, 가슴이 저리게 아팠던 일을 잊고자 중용의 마음을 회복한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잊기 위해 하는 음주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고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며 숙제를 던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얼마 전 어떤 이의 무절제한 행동에 스물두 살, 채 꽃피우지도 못한 한 청년이 생을 마감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음주 폭행, 음주운전 등 음주로 인한 여러 문제를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잊어야 할 것을 잊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우린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나친 음주는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함께 무너뜨리며 저 멀리 던져 버리기도 한다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금세 잊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올 한 해 힘들게 살아왔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힘들었기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고, 잊어도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논리, 하지 못한 아쉬움, 부치지 못한 마음의 짐들은 버려야 할 것들이지만 의무 지키기, 권리 위에 잠들지 않기, 불의에 대항하는 의지, 사랑하기, 공동체 보듬기 등은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한 해를 지나며 옛 성현들의 수신(修身)의 도리를 잊지 않고 행함이 드러나도록 움직여야 한다. 불의와 정당치 못한 행동 같은 내 안의 묵은 때들을 벗기고 마음을 정돈하며 내 마음의 커다란 한지에 이름 석 자를 써 내려가는 서예가의 마음처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무섭게 변해가던 눈빛을 바꾸고, 험해져 가던 입꼬리를 점차 떨어뜨리고 점차 가라앉혀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한 해의 부족함은 잊되 다시는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망들은 내 편, 네 편의 이기적인 마음의 결실이 아닌 희망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결실에 필요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회피, 은폐, 엄폐보다는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들이 많이 겪는다는 `잊힘의 공포'가 우리 사회에 적용되지 않도록 함께 모으는 희망의 손짓이 좋은 결과를 맺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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