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 법칙
프레임(frame) 법칙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11.22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기도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담배를 피우면서 기도하는 것은 같은가? 다른가? 밤에 술집 접대부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낮에 여대생 신분이 되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것과, 여대생인 그녀가 밤에 학비를 벌기 위해 술집에 나가 접대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경우가 더 바람직한가?

동일 사건에 대해서도, 어떤 위치에서 어떤 시각 및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지며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 이미 틀 지워진 생각의 덫인 프레임(frame)에 따라 시각과 관점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며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떠한 생각의 틀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동일 상황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프레임 법칙'(Frame law)이다.

1913년 시집 `기탄잘리'로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한 인도의 타고르(1861~1941)와 같은 대 시인도 생각의 틀에 사로잡힌 채, 출근 시간을 어기고 세 시간 늦게 허겁지겁 달려오는 자신의 집 청소부를 그 자리에서 해고시켰다고 한다. 하인이 “어젯밤에 딸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이라며 자신이 지각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 타고르는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얼마나 편협하고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헷세'는 명저 `데미안'을 통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는데, 인간도 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롭게 거듭나고자 한다면 자신의 우물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자신의 에고(ego)인 아상(我相)을 깨부수어야만 그 어떤 생각의 틀인 프레임에도 걸림 없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어떤 프레임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은 갓난아기처럼, 마을을 비우고 무아(無我)의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 및 수행의 궁극은 `나'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남으로써 `나'라는 업식에 뿌리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생각의 틀을 온전히 깨부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좁아터진 우물을 벗어나, 모든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지혜로운 영혼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공자님께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말씀과 함께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군자는 그 어떤 그릇(틀, 프레임)도 고집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을 역설하신 바 있다.

개는 개의 프레임에 갇혀서 개소리를 하고 개짓을 하는 까닭에 쉰내 나는 뼈다귀에 눈길을 준다. 사람은 사람의 프레임에 갇혀서 개도 물어가지 않는 종이쪼가리인 수표에게 눈길을 빼앗긴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하나 되는 접점을 찾기 위해선, 서로의 옳고 그름 및 우열을 다투기보다는, 각자가 고집하고 있는 프레임을 벗어 던져야 한다. `나'라는 우물을 벗어날 때 비로소,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견(正見) 할 수 있게 된다. 문득 무학 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설파한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