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11.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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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평온하던 어느 교회가 시험에 빠지고 말았어요. 새로 교회에 출석한 신도가 복음성가를 부를 때 반주 악기로 썼으면 좋겠다며 최신판 드럼 세트를 헌물로 드렸기 때문이에요. 평소 드럼을 칠 줄 알았던 다른 신도는 뛸 듯이 기뻐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어요.

찬송을 부를 때 손바닥으로만 하는 비트(beat)에 싫증이 났던 신도들은 함께 기뻐하며 교회의 분위기가 더 활력을 띨 것이라 동조를 했지요.

물론 찬성하는 쪽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엄숙하고 경건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신도들은 거세게 반대를 했어요.

교회가 무슨 댄스장도 아니고 록 콘서트장도 아닌데 드럼까지 쳐댈 건 뭐냐고 싫은 기색이 역력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결사반대로까지 가려고 했던 겁니다. 마침내 교회는 드럼파와 고요파로 갈려져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지요.

궁금했어요. 신의 뜻이란 게 드럼을 가지고 어느 한 편에게만 손을 들어주었을까 말이죠. 싸움이 없던 동물의 세계가 논란에 빠지고 말았어요. 분란 일으키는 걸 즐기는 아무개 동물이 누구의 코가 더 아름다운지를 놓고 내기를 붙였기 때문이에요.

코끼리의 코와 코뿔소의 코를 놓고 말이죠. 코끼리의 코는 지나치게 길어서 보기 싫다는 동물들은 코뿔소의 코가 아름답다고 힘을 모았고, 코뿔소의 코는 뿔이 나서 보기 싫다는 동물들은 코끼리의 코가 아름답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겁니다.

심지어는 코끼리와 코뿔소가 대결을 벌여 진정한 승자를 가려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와 상황은 미궁으로 빠져들었지요. 결국 동물의 세계는 코끼리파와 코뿔소파로 나누어져 서로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궁금했어요. 코끼리의 코는 코끼리답고 코뿔소의 코는 코뿔소답기에 아름다운 게 아닌가 말이죠.

뭣이 중헌디?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면서까지 손에 쥔 것을 버리지 못하는 옹색한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이성복 시인의 `그렇게 소중했던가'라는 시가 세상살이에 자꾸 비루해져만 가는 제 멱살을 잡고 흔들어주니, 조금 정신을 차릴 만하군요.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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