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물
한 모금의 물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팀장
  • 승인 2018.11.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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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팀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팀장

 

여전히 낙엽은 떨어지고, 길 가던 행인들의 버려진 담배꽁초만 몇 개 더 널부러져 있을 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다. 분명 처음 들어서는 직장의 현관 앞이 아니거늘 오늘따라 침체된 느낌의 기운이 맴돈다. 경비해제를 시키고 신문을 집어든다. 이곳에 입사하고 10여 년을 보냈고, 이곳을 떠난 지 7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변한 건 건물의 낡음 정도가 심해지며 외벽이 분출해 내는 기운. 이 기분, 비엔날레라는 행사를 끝내고 난 뒤 텅 빈 전시장의 기운이다. 행사 기간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많은 이야기를 섞고 웃던 시간이 멈추고 난 뒤, 텅 빈 공허함으로 허해진다.

국립현대미술관 협력망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보존센터가 청주에 개관에 있어, 전국단위 미술관 소장품에 대한 분석, 보존처리, 교육에 대한 계획을 중심으로 광주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보존처리, 과학적 분석을 통한DB구축, 보존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지원에 사업별로 매년 50여 건씩 지원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문화예술의 도시(?) 청주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전국에는 12개 협력미술관이 있다. 청주와는 비교될 수 없는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소장품 구매예산만 하더라도 3억에서 서울시립과 대구시립의 경우 15억 원이다. 소장품 전문전담인력을 한두 명씩은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들이 협력망 사업의 협의체이다. 충북의 대표는 청주시한국공예관이다. 대한민국 공립미술관 중 유일한 공예전문미술관이다. 공예분야 유일의 비엔날레를 시작한 청주가 갖는 차별적으로 자리를 점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협력망 사업의 진행에서 다른 지역 미술관 간 네트워크가 강해지면서 밀려오는 불안감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2001년 9월 공예관에 입사하면서 명절과 휴일도 반납하고, 밤낮없이 일했다. 공예관에 우연히 들른 이에게 공예에 대해 공예관에 대해 설명했다. 내 역할은 사람들과 작가들과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전시에 대해, 공예에 대해, 그리고 서로 사는 삶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작고 볼품없는 운영인력도 제대로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랬다. `당신은 시대를 비춰주는'이라는 글귀를 남겨주고 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그것은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예분야 세계최초로 개최한 1999년 비엔날레의 상설전시관으로서 생겨난 공예관이 별도의 기관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현실로 보이게 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예전문미술관으로서의 명품관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으며, 부딪치고 싸웠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고향은 을씨년스럽다. 어쩌면 끝을 볼 수 없는 사막인 듯도 하다. 허름하지만 새로운 터를 보고 부딪쳐 왔는데, 넘어야 할 산이 겹겹이다. 새벽 3시면 늘 눈이 떠진다. 그리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종자를 뿌려 키우고 있는데 갈아엎어 지는 상황이다. 이래서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마음과 몸은 회생불능으로 가는 듯하다. 걸고 걸어도 오아시스는 없다.

사막에서 필요한 건 한 줌의 모래라 하고, 진리를 확인하는 방법은 실천이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잡는다. 이제 나에게 남은 한 모금의 물이 다인 듯하다.

나에겐 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때 인권변호사였고 지금은 시정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2006년 처음 인사를 하고 오브제로서의 공예뿐만이 아닌 교육과 인간의 본질성과 감성산업에 대한 공예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을 현실에 풀어내는 게 내 역할이라 거듭 나에게 기도하고 되새기면서 말이다. 17년간, 켜켜이 쌓인 것이 지금 이 시간에도 무엇인지 자문하면서, 물 한 모금을 소중히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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