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우먼 워킹 (Dead Woman Walking)
데드 우먼 워킹 (Dead Woman Walking)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0.28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아빠를 사형시켜 달라'는 딸들의 절규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된 여성의 딸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아빠를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딸은 게시판을 통해 “엄마가 끔찍한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이혼 후에도 4년여 동안 살해 협박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실제로 숨진 여성은 전 남편의 살해 위협과 폭행에 시달리며 도망자의 삶을 보냈다. 남편은 과거 결혼한 상태에서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이혼의 사유도 반복적인 가정폭력이었다. 이혼 후에도 그녀는 전 남편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10여 차례나 바꾸고 4년간 다섯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거처가 발각될 때마다 모진 폭행과 위협이 가해졌다. 카카오톡으로 일가족 살인사건 기사를 보내며 `딸들과 함께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칼과 밧줄을 들고 찾아와 위협하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녀의 고단했던 도피 생활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좀 더 적극적으로 경찰에 도움을 청해야 했다거나, 무기력하게 도망만 다닐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대처했어야 한다는 따위의 한가한 말로 아쉬움을 표하기에는 그녀에게 주어진 상황이 너무도 암울했다.

공권력도 법도 그녀의 도피생활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법적 대응은 상대의 감정만 자극해 횡포의 수위만 높이는 역효과만 냈을 뿐이다. 가정폭력은 일반 폭력범죄와 다르다. 우선 상습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른 가족들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남김으로써 복수의 피해자를 낳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사건처럼 더 큰 범죄로 이어지기 일쑤라는 점이다. 어떤 범죄보다도 중벌로 다스려야 할 터이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다. 처벌을 원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통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경찰이 검거한 가정폭력 사범은 16만4020명에 달한다. 피해자나 가족이 용기를 내 신고한 사례가 이 정도다. 보복이나 수치심 때문에 당하고도 신고를 못 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가정폭력 실태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도 검거된 가정폭력범 중 구속된 사람은 1%도 안 된다. 일반 상해·폭력사범의 구속률이 10%다. 가정폭력범은 경찰에 잡혀들어가도 100명 중 99명은 바로 풀려난다는 얘기다. 단순한 부부싸움이나 가정사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배우자나 애인 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82명이다. 미수에 그친 것도 105건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관용이 억울한 죽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할 일이다.

살인범은 딸들에게 `나는 사람을 죽여도 반년이면 풀려난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심신미약을 주장해 법망을 피해갈 준비를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정신병원 진단을 미리 받아두는 식으로 말이다. `아빠가 풀려나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아빠를 사형시켜 달라'는 딸들의 호소가 공감을 사는 이유이다. 물론 딸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된다. 선고만 존재할 뿐 집행은 20년째 유보되고 있다. 그렇다고 사형을 대체할 `감형 없는 종신제'도 도입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이다.

영화 제목으로 유명해진 `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은 사형수를 의미한다. 번역하자면 `걸어다니는 시체'정도가 될 것 같다. 살아있지만 언제 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사형수의 시한부 삶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형수는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어다니는 사람(Man Walking)'이 된지 오래다. 사형제를 폐지해 문명국으로 가야한다는 관점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무고한 시민이 `죽여버리겠다'는 사형(私刑)을 선고받고 잔혹한 방식으로 처단 당하는 과정에 무력한 나라도 문명국은 아닐 것이다. 반복되는 부당한 폭력과 협박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여성들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데드 우먼 워킹(Dead Woman Walking)'과 다를 게 없다. 사형수 아닌 사형수인 그들을 그대로 두고 사형제 폐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들을 `우먼 워킹(Woman Walking)'으로 만드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