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그리고 캘리그라피
한글 그리고 캘리그라피
  •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 승인 2018.10.1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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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제일 먼저 세종대왕이 떠오르기도 하고, 훈민정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경필대회'라는 글씨쓰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주어진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 곱게 써내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글씨 잘 쓰는 사람들이 참 귀하게 인정받았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컴퓨터 자판 글씨 등의 영향으로 손 글씨는 예전보다 귀하게 대접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반듯한 손 글씨는 일상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계화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나면서 손 글씨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캘리그라피'입니다. 다양한 캘리그라피 강좌와 더불어 사설 교습소는 캘리그라피 자격증반까지 운영되는 곳도 있습니다. 꼭 전문가가 되기 위함 보다는 아름다운 글씨예술에 대한 관심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더해져 나타난 현상으로 보입니다.

캘리그라피(이하 캘리)의 사전적 의미는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로 나와 있는데 사실 캘리의 경우 어떠한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직접 손으로 쓰고 멋스런 개성을 보여주는 글씨로 보시면 됩니다. 캘리를 배우고자 하는 분 중에는 캘리가 어떤 특별한 규칙, 법칙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지도자들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글씨 기술이 캘리의 원칙이며 하나의 법칙인 듯 호도하기도 합니다. 물론 붓을 다루는 순수 예술의 영역으로 한정 지어 비평한다면 대중적인 의미의 캘리에 대해 엄격한 평가의 잣대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 예술적 평가기준은 다음 기회 논제로 남겨두고 오늘은 캘리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한글쓰기에서 우리가 꼭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글은 기본적으로 자음(子音)+모음(母音)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글 서체에서 대중적으로 보급된 `궁체' 기준으로 자음 모음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자음은 모음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모음이 기준 축이 되어 일종의 `마름모꼴'안에서 형태가 만들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아, 야, 오, 유'만 살펴보더라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글 고체나 기타 다양한 한글 서체에서는 자모음 크기 비율이 궁체만큼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음이라는 기준 축이 흔들리면 자모음이 다양하게 결합된 한글의 특성상 아무리 예쁜 글씨라 해도 시각적으로 오래 머물기 힘듭니다.

두고두고 보아도 아름다운 글씨가 되려면 최소한 한글의 기본적 구조에 대한 품격을 지켜줘야 합니다. 여기에서 품격이란 한글구조의 특성을 파악하고 글자의 안정적인 질서를 잡아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문장 전체의 조형미를 위해 한글의 자음, 모음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자모음의 크기가 바뀔 수도 있고 그 형태가 과장 왜곡되어 변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캘리그라피로 불리는 영역 안에서 기존 질서의 변형과 왜곡도 허락될 수 있다는 묘한 예술적 자유를 핑계 삼아 그 수준이 도를 넘어, 심지어 해독 수준을 거쳐야 글자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표현들은, 정말이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문자는 문자를 통해 그 뜻을 전달하는 게 기본목적입니다. 이왕이면 문자를 통해 아름다움을 전달한다는 캘리그라피…. 손글씨라는 특성에 취해 본래 한글문자가 가진 아름다운 속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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