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보수와 진보
다시 보는 보수와 진보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7.1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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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세력이 참패했습니다. 아니 궤멸했습니다. 대한민국 선거사에 미증유로 기록될 선거 결과에 진보세력들은 들떠서 만세를 불렀고, 보수세력들은 참담해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민심의 대변혁이었고 파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영남을 기반으로 했던 자유한국당의 오랜 아성이었던 부산·울산·경남까지 석권하며 전국을 온통 파란 물로 물 들였으니 말입니다. 본산인 대구·경북마저 내어줄 뻔했던 자유한국당의 혼비백산은 당연지사입니다. 승리에 도취한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세력들은 자신들이 잘해서 대승을 거둔 것인 양 으스대고 당연시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들의 실정과 민낯에 많은 국민이 등을 돌렸고, 홍준표 대표를 위시한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민심에 반한 경솔한 언행들과 미숙한 선거전략에 크게 실망한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이반했거나 대거 기권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이 핵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러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으니까요. 사실 한국 사회에서 운운하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우파정권과 좌파정권은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상이고 허구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역정당과 기득권세력이 있을 뿐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는 없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이 그렇게 포장해 각을 세웠을 뿐입니다. 그 정점에 박정희와 김대중이 있었습니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과 정당은 경상도 사람들을 볼모로 삼고,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과 정당은 전라도 사람들을 볼모로 삼아 지역감정에 기초하고 호소하는 선거전략과 선동정치를 했습니다. 여기에 선량한 국민이 휘둘리고 놀아났던 겁니다.

속된 말로 막대기만 꽂아놔도 그 지역에서는 그 당 공천자가 당선되는 웃지 못할 선거가 이를 웅변합니다.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이념과 성향을 갖고 있어서 콘크리트 지지를 했나요? 아닙니다. 결단코 아니었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원래 보수성향이라서 보수정당에 투표한 게 아니고, 전라도 사람들이 원래 진보성향이라서 진보정당에 투표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남이냐'하며 혈연·지연·학연에 휩쓸려 묻지마식 투표를 한 겁니다. 경상도로 대별되는 동쪽지역의 인구가 월등히 많다 보니 영남당 후보들이 정권을 잡기에 유리한 구조였고, 호남 홀대론과 호남인이 흘린 피눈물과 분노도 거기에 기인했습니다.

그 틀을 깬 분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 씨와 이른바 DJP연합으로 대선에 승리해 정권을 잡은 첫 번째 호남출신 대통령이 된 거죠.

각설하고 세상은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가 충돌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합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전진도 하고 후진도 하면서, 강물이 좌우를 구비 돌아 흐르듯이 시대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진보정권이 들어서기도 하고 보수정권이 들어서기도 합니다.

보수세력이 졌다고 영원히 지는 게 아니고, 진보세력이 이겼다고 영원히 이기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생애도 그렇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고, 나이에 따라 신념체계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참 보수와 참 진보가 선의의 경쟁을 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그렇게.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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