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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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2.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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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가장 좋은 약은 사랑입니다
김 훈 일 주임신부 <초중성당>

성경에 욥기가 있다. 의로운 욥은 사탄의 시험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육신은 고약한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욥은 육신의 고통을 통해서 인간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는 비록 육신의 고통이 삶을 뿌리까지 흔들더라도 하느님께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잊지 않으신다면 잘려진 가지에서 새순이 나오고. 썩어가던 뿌리가 물기를 만나 가지를 뻗듯이 새 생명의 은총을 내려주시리라고 희망한다. 욥의 신음 소리 안에서는 이 땅 위에서 살다간 인간의 처지가 묘사되고 있다.

욥에게 일어난 육신의 병과 고통은 사탄에게 노출된 우리의 인생사를 말해준다. 모든 인간은 보편적 운명을 지녔다. 질병과 고통은 어느 날 이유없이 찾아오고 삶의 뿌리를 흔들어 버린 다음 결국에는 죽음과 연결된다. 질병과 고통 앞에서 인간의 육신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질병과 고통 자체가 인간의 죄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더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죄와 악과 투쟁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의지를 가지듯이 육신의 질병에도 투쟁한다. 예수님께서는 질병에 노출돼 고통 중에 있는 인간을 가장 먼저 찾으셨고. 치유의 근원이 믿음과 사랑에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육신의 질병도 결국 인간 존재의 불완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하느님의 손길이 있어야 고통이 없는 완전한 육신을 회복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완전한 육신의 부활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육신의 고통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내고 치유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를 원하신다. 의료 행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치유 능력을 체험케 하기 위해서 만드신 방법이다. 의료 행위를 통해 인간은 질병이 인간을 좌절하게 하지 못하며 동료 인간의 보살핌과 사랑이 질병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믿게 한다. 의료 행위는 인간에게 집중된 사랑의 구체적 행동이고. 같은 처지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이다.

요즘 보건의료 정책이 다시 개정된다고 한다. 개정되는 의료 정책을 놓고 의료계와 의료정책자들 사이에 갈등이 보인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의료 정책이 본질을 놓치고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 행위가 인간을 위한 구체적 사랑의 행동이 아니고 자본의 노예가 된 것 같다. 질병과 고통이 자본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헌신적인 질료와 간호하는 이들의 도움 즉 인간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이겨낼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개정에서도 서로의 이익에 관한 문제로 싸우는가 보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의료영역을 침해한다고 항변하고 다른 영역의 의료 종사자들은 독점적 지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를 치료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의 아픔을 나누고. 불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로해야할 이들이 자본의 노예가 된 것이다. 항생제 남발과 과도한 의료 행위. 유해한 생활환경. 오염된 먹을거리. 의료보험공단의 재정적 위기 등 국민 건강을 해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금 의료 종사자들의 모습은 적지않은 실망을 안겨준다. 의료행위가 고통 중에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숭고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대하시며 구체적인 치료의 방법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먼저 그들의 고통에 다가가셨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오히려 회피하고 박대하는 그 병자들을 찾아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셨고. 그들의 아픔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으며.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값비싼 의료장비와 획기적인 약과 유명한 의사보다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해주는 사랑이 인간에게는 더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방법이다. 많은 의료 종사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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