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아픔을 나누는 방법
공유, 아픔을 나누는 방법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12.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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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안전 불감증, 예고된 인재'라는 비극이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29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제천 `두손 스포리움'의 화재는 차분하게 한 해를 되돌아보려는 우리네 마음을 더없이 부끄럽게 하는 최악의 참사가 되고 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였던 나는 이번 제천 `두손 스포리움'의 참극이 유난히 가슴저린 기억을 갖고 있다.

1993년 1월, 대선을 막 끝내고 김영삼 문민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절에 터져버린 청주 우암상가 붕괴사고는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만큼 충격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한밤중에 큰불이 났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속절없이 건물이 가운데로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봤고, 두 어린 자식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은 업고 또 한 명은 품 안에 안은 상태에서 함께 목숨을 잃은 모자의 안타까운 주검을 발굴하는 처참한 모습도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서울 성수대교 붕괴 이후 도내 위험교량의 진단을 위해 기획취재에 나섰다가 충주호 유람선 화재의 처음과 끝을 사진기자와 함께 현장에서 지켜본 유일한 기자였다.

단풍이 고운 가을이었고, 모처럼 불어난 물길을 따라 단양나루까지 올라갔던 유람선은 선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FRP 소재인 탓에 순식간에 화마가 배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 사고로 희생된 인원만 해도 우암상가 붕괴로 28명, 충주호 유람선 화재로 29명이었다. 당시 기자 신분으로서는 일생일대 만나기 쉽지 않은 최대의 특종이었으되, 수많은 주검을 현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취재에서의 결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안전 불감증'과 `예고된 인재'로 귀결되고 있으니, 20년을 훌쩍 넘기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세상은 분명 달라지고 있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뜻밖의 비극 앞에 제천의 상가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영업을 중단했다. 제천체육관에는 합동분향소가 차려져 전국 각지에서 국민의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우암상가 붕괴사고 때나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 당시에는 없던 일이다.

우리가 합동분향소를 차렸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로 기억된다. 안타까운 소식에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동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시민들의 추모행렬은 자발적인 공유였다.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과 무능한 정부에 분노했던 시민들의 가슴엔 노란 리본이 물결을 이루었고, 그렇게 시민이 스스로 나누었던 애도는 결국 촛불혁명을 만들어 냈다.

시민의 힘은 스스로 뭉쳐 슬픔과 분노를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기쁨과 건강하고 온전한 사회의 회복에 대해서도 함께 했다.

2002년 전국의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은 스스로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열광했고 박수로 한 몸이 되었다. 태안 앞바다 유조선 침몰사고 때는 손에 손마다 하얀 천을 들고 기름으로 범벅이 된 돌과 백사장을 일일이 닦아 내는 무모한 도전과 공유를 통해 국토의 건강한 회복을 앞당기는 기적을 만들기도 했다.

`안전 불감증'과 `예고된 인재'는 여전히 씻어지지 않는 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 끝없는 욕망에 희생되는 이들은 어이없게도 너무도 평범하고 나약한 시민들이다. 우암상가의 부실시공이 그랬고, 정원을 훌쩍 넘겨 욕심을 부린 충주호 유람선 화재 역시 근본원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벌이에 대한 탐욕이었다.

제발 소방관들을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하게 당부하는 제천 희생자 유가족의 외침은 거룩하다.

시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건강하게 스스로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돈만을 노리는 탐욕이고, 이런 파렴치는 우리가 기필코 떨쳐 내야 할 적폐다.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새해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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