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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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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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교육의 인식론적 실천
오 희 진 <환경과 생명 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창밖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거기 있었다. 안은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더했다. 그대로 더운 차를 마시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으면 세상은 정말 살만 한 것이다. 세상은 그런 이미지들로 넘쳐나기에 이렇듯 현실이 겹쳐지면 누구나 거기 무대에서 연기를 마다지 않는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틱해서 어느 순간 상실하게 될 어떤 것이기도 하다. 눈이 금방 그치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는 분열된 ‘나’는 재빨리 잃어버린 욕망의 빨판을 거기 접속해간다. 나는 그 무대에서 악착같이 연기를 계속하고자 하며 그것은 창밖에 내리는 눈의 환타지적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그 눈은 차가운 대신 보드라우며 현실의 냉혹함이 아니라 마음을 풍부하게 해주는 은총으로 여겨진다. 그 눈은 보드라워서 얼어붙은 대지를 덮는 흰 양털 융단이 되고 마음이 풍부해져서 냉혹한 세계를 녹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의 마법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이 환상의 눈은 이제 더 이상 겨울의 전유물로 끝나서도 안 된다. 마침내 마음까지 담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눈을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하여 자연의 눈은 여름에도 만들어져 세상에 뿌려지고 용기로 제조되어 사랑이 필요한 곳이면 실내 어디라도 분무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눈은 자기 본성이 숨겨져서 거꾸로 이해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눈은 영하의 날씨에서 수증기가 얼어 내리는 흰 결정체이다. 눈은 생명을 멈추게 하는 겨울의 전령사이며 이로부터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겨우내 살림살이를 걱정한다. 눈은 산간을 덮어 짐승의 먹잇길을 막고 사람들을 미끄러지게 하며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눈은 따라서 생명을 위협하고 앗아가는 겨울의 직접적인 발현이며 냉혹한 세계의 악의 펼침막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그것은 창에 비치는 눈 풍경이 그 안쪽 보호막을 누리는 ‘나’에게 어떻게 거꾸로 인식되며, 나아가 눈의 인공분무가 반자연의 사물화된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되묻게 되는 연유이다.

눈은 더욱 거세어져서 이제는 내리지 않고 수평으로 달리는 것이 보였다. 창 안에 있는 ‘나’는 그 영사막에 비치는 눈의 환상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눈보라폭풍은 화면을 흔들고 금방이라도 안으로 밀어닥칠 만큼 무섭게 온 세상을 검게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그 때 또 다른 인간의 진리를 거기서 일별하고 온전한 ‘나’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는 숲이었다. 눈은 내리고 먼저 그 하얀 위선과 백색테러를 막아 방패가 된 것은 나무였다. 눈은 된바람을 몰아 나무를 들이쳤고 나무는 둥치 한 쪽으로 눈보라를 받아냈다. 모든 나무는 똑 같은 방향에서 공습하는 눈을 뒤집어쓰고 숲을 지켰다. 눈보라의 대군은 하늘뿐 아니라 낮은 땅을 타고 상륙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를 안간힘으로 받아 안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낙엽이었다. 그 중에 가는 바늘 모양의 침엽조차 눈송이와 백병전을 벌이고 그 전진을 멈추게 했다. 잠시 후 눈보라가 물러나고 내보인 광경은 생명의 숲이 어떻게 봄이 되면 다시 푸르러질 수 있는지 장엄하게 펼쳐 보여주었다.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는 예언은 이렇듯 겨울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온전한 ‘나’를 확인하는 교육의 인식론적 실천의 도정이 있기에 현실성을 얻게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나’, 온전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표할 줄 아는 것이 역사와 자연을 대하는 용기임을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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