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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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도순<수필가>
  • 승인 2017.07.0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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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농사짓기를 힘들게 한다. 농사만 잘 지으면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방해꾼이 있다.

농작물의 새순을 잘라 먹는가 하면 수확이 가까워진 고구마를 뿌리째 뽑아놓아 일 년 농사를 망쳐 놓기도 한다.

정성들여 가꾸어 상품(上品)을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아야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허탈해야 하는 심정을 누가 알까.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한숨을 부르는 결과가 되니 어디다 하소연할 길도 없다.

농지가 산과 가깝게 위치한다는 이유로 한 가지 일이 추가 된다. 품질을 좋게 하여 누구나 원하는 생산물을 얻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고라니, 멧돼지와 같은 산짐승이 애써 가꾸어 놓은 농작물을 망치기 때문이다. 어렵게 가꾸어 놓았는데 맛있는 먹을거리를 쉽게 차지하려고 막무가내로 달려든다. 그들을 막으려고 설치한 망을 넘어다니며 비웃기라도 하듯 온 농지를 헤쳐 놓아 시름을 더해준다.

촘촘한 망을 밭 둘레에 높게 설치한다. 땅의 경계를 표시해 놓은 것이 아니다. 농작물을 훔쳐 먹는 산짐승을 막으려는데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재배하는 농작물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마음에 궁여지책으로 표시하였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주면 그들의 통행로가 되어 그동안의 수고가 허사가 된다. 그러니 망을 치는 데 필요한 지지대를 튼튼하게 세우고 처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일손도 많이 필요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된 방법이다.

농작물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나라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 장애물을 설치하는 자재비를 지원하거나, 야생동물 포획단을 운영하지만 피해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보호가 최우선이지만 농사를 짓는 농업인은 생활의 터전이다.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여 소득을 올려야 한다. 생산품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으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여 생산비도 못 건지게 된다. 먹고사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쉽게 물러나기가 어렵다. 서로 입장이 첨예하여 타협의 여지를 보여주기가 난감하다.

농작물의 피해를 당하는 농민의 처지에서 보면 괘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산짐승의 위치에서 보면 길을 다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 굶주린 배를 채운 죄밖에 없다.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서도 생각이 다르다.

피해를 준 산짐승의 행태를 보면 없애는 쪽으로 기울기도 하지만 환경보호 측면에서 보면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 어느 쪽을 두둔해야 맞는다고 할 정답은 없어 보인다. 결론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몇 년을 두고 밭 주위에 망을 설치하였으나 안전하지 않았다. 금년에는 산짐승이 피해를 주지 않는 작목으로 들깨, 참깨, 고추, 옥수수를 심어 가꾸고 있다. 새벽에 밭을 둘러보는데 고추 이십 여포기가 새순이 없어졌다. 고추를 몇 년째 심어 보았지만 이번이 처음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고라니 두 마리가 놀라서 도망을 간다. 피해를 막으려면 어떤 선택이 올바른가.

산짐승을 없애는 방향으로 할까, 더 높게 망을 쳐서 막아야 하나, 아니면 피해를 덜 받는 작목으로 농사를 해야 되나. 선택의 기로에 서서 망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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