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아 놀자~”하고 진구가 부르면 “그래 진구야” 하며 달려나갔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저 녀석 진구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하시며 그래도 잘 노는 저를 대견스럽게 여기셨습니다. 제가 약하다고 모두 안 놀아주는데 진구만이 저를 유일하게 친구해 주는 것이 고마워 진구의 부름에는 언제고 달려갔습니다.
저는 어려서 몸이 약해 힘든 일은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논밭에 나가도 부모님이 일하시는 옆에서 그저 놀다가 물이나 떠다드리는 심부름이 제가 할 몫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갔다 돌아와서 놀러 나가는 저에게 아버지는 “어디 가냐? 이 바쁜 철에~ 지금 산송장이라도 일으켜 세워 함께 해야겠구먼!” 하시며 논에 가서 못줄을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기뻤습니다. 아버지가 이제야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난 후 저는 당당한 일꾼이 되어 부모님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동생들을 돌보기도 하면서 누가 시키든 말든 집안의 주인처럼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처음으로 달리기에 참가해서 꼴등을 하였습니다. “아이고 나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꼴등이구나!”하면서 풀죽어 한쪽에서 다른 형들과 누나들 운동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반 아이들이 마지막에 줄다리기가 있다고 다 모이라 했습니다. 저는 힘도 없고 잘 못하니 한쪽에 서서 응원이나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 하시는 말씀 “야! 너는 뭐 하고 있어? 어서 가서 줄을 잡고 줄다리기를 해야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가서 줄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줄을 당겼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반이 이긴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어서 이긴 것도 아닌데 내가 참가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썼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줄다리기 같은 단체 운동에는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아 전체가 무엇을 할 때는 나 같은 힘없는 사람도 필요하구나!'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몸으로 하는 운동을 잘하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머리로 하는 것까지 잘못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업시간이면 집중해서 듣다 보니 공부를 못한다는 말은 듣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늘`나는 몸이 약해.'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잠시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저도 농사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몸도 건강해져 몸이 약했다는 생각이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저희는 전원이 합창 연습을 해서 무대에 서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로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학교에 음악선생님이 계시기는 했어도 겨우 시험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배웠을 뿐 제대로 음악을 공부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합창연습 시간만 되면 핑계를 대고 빠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 선생님이 어느 날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잘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합창에 필요하다니~'하면서 열심히 합창연습을 하여 무사히 공연을 마쳤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저 같은 사람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지금은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요, 소중한 남편이며, 소중한 친구니까요. 그런 저를 제가 어찌 혼자라 생각해 함부로 행동하며 되는 대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설혹 좀 부족하게 생각될지라도 나라는 이 모습이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며 값진 것이니 주어진 역할을 정성스럽게 해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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