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만 남은 스승의 날
청탁금지법만 남은 스승의 날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5.16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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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올해 스승의 날은 여느 때와 달랐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라서 그런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물론 학교 현장의 변화된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만큼 다양한 이벤트도 연출됐다.

신문이나 방송 매체는 앞다퉈 청탁금지법 이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주최하는 음악회를 열고 교사들이 제자를 위해 장학금을 전달했다며 달라진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학생들은 비싼 선물을 건넨 친구와 비교당하지 않아 좋고, 학부모들은 선물 고민에서 해방됐다며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교사 역시 죄인 취급 받지 않아서 홀가분했다는 데 이를 지켜보면서 씁쓸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인이 물었다. 중학생인 조카가 뒤늦게 제과 제빵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껴 파티시에의 꿈을 꾸고 있다고.

조카는 스승의 날 담임 선생님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빵을 선물하고 싶은 데 청탁금지법에 저촉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동료에게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지인의 질문을 받고 도교육청 감사관실로 질의를 했다.“학생이 직접 만든 빵을 선생님에게 전해도 되냐고”. 답변이 왔다.“이해는 하지만 청탁금지법 때문에 안됩니다”

지인에게 들은 대로 전했더니“법도 좋지만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법 같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꿈을 갖게 된 자신의 모습을 담임 선생님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지인의 조카는 결국 빵을 만들지 못했다.

학부모들 사이에 불만도 나왔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전할 수 있는 대상이 반 대표나 학생회장으로 제한돼 대표가 아닌 학생은 꽃도 못 달아드린다. 이런 행태가 오히려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것이다.

꽃 한 송이조차 청탁으로 해석하는 법 때문에 교사에게 달아줄 꽃을 학교 운영비로 구입하는 현실 앞에서 법을 준수했다고 칭찬해 줄 일인지 고민스럽다.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은 달갑지 않은 날이 됐다.

올해도 스승의 날 많은 학교가 재량 휴업을 실시했고, 충북에서도 6곳이 문을 닫았다.

학교 문을 닫아야 속 편하다는 스승의 날이다 보니 교사들은 아예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고 한다.

한 교사는 “얼마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면 스승의 날이 있겠냐”며 “교사를 마치 촌지를 밝히는 속물로 보는 사회분위기 탓에 수십 년 천직으로 알고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까지 자괴감이 들게 하는 스승의 날 자체가 싫다”고 털어놨다.

매년 스승의 날 고교 은사님을 찾아 뵌다.

청탁금지법과 상관없이 올해도 은사님과의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학교를 졸업했으니 청탁금지법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눈치가 보였다.

은사님은 사회인이 된 제자를 위해 머리 식힐 겸 한 번씩 넘겨보라며`행복은 지금 여기에'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책을 읽어보니`금가루가 비록 귀하다 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상하게 한다'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침도 잊지 않으셨다.

스승의 가르침은 교실 안에서도, 교실을 벗어난 사회에서도 이어졌다.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준 만큼 받아야 하는 `give and take'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사제지간이 청탁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스승의 날이 두려운 날이 되는 게 당연하다.

기성세대의 비뚤어진 교육관이 스승의 날조차 씁쓸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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