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제 구실을 할지 몰라?”하시는 걱정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아버지 왜 그러시는데요? 뭐가 잘못되었는가요?”하니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아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12마리를 낳았지 뭐냐. 그런데 그중에 한 마리가 좀 시원찮아서 그런다.”그 말씀을 듣는 순간“아 시원찮으면 제 구실을 못하는구나! 제구실을 잘 하려면 건강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스스로 어느 방면에서든지 시원찮다 생각되면 그 말씀이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자라면서 가난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학교에 다녔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을 저의 부모님으로 알고 부모님 대하듯 열반하실 때까지 모셨습니다. 그 중 한 분이 돌아가시기 전 어느 날 “나 같은 사람은 어서 죽어야 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하고 여쭈었더니 “내가 힘이 없으니 오라는 사람도 없어. 그러니 그간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애경사도 못 챙겨주고 사네. 이것이 어디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여?”하셨습니다.
아마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경제적으로도 살만큼 살면서 주위 어려운 사람 있으면 도와도 주고 지인들과 왕래도 하고 때로는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서, 자식들 낳아 잘 키우고 친척이나 친구들의 애경사도 챙겨주며 살아야 사람구실을 하는 것으로 여기신 모양입니다. 연세가 들고 아는 사람은 하나 둘 열반 길을 떠나고 방안에 온종일 계시는 것이 서글퍼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분은 열반하셨지만 지금도 어느 순간“이것이 어디 사람 사는 모습인가? 사람이 살았으면 사람 구실을 해야 사람이지.”하시던 그 말씀이 떠올라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군대에서 목봉체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목봉체조는 커다란 목 봉을 9명이 같이 들고 앉았다 일어나기도 하고 한쪽 어깨에서 다른 쪽 어깨로 옮기기도 하면서 9명이 서로 호흡을 맞추어 하는 집단 체조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힘들다고 같이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더 힘들어지니 서로 자기가 들어야 하는 만큼 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너무도 힘든 체조였습니다. 아마 세상살이도 자기가 책임 맡은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더 힘이 들어야 하는 목봉체조같이, 살면서 내가 나의 구실을 하지 않고 산다면 나와 함께하는 많은 사람은 내가 힘쓸 만큼을 더 힘쓰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제 구실을 한다고 하면서 살아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일과 겹쳐져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애를 써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아예 다 무시하고 내 몫 챙기기에 바빠서 허덕이는 삶을 산다면 사람 구실을 다하며 살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한번은 학생들과 해외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나라에서도 그러려니 하고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침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호텔로 옮기자. 어디 이런 호텔이 다 있어!” 하며 아우성을 쳤더니 가이드가 하는 말 “이 나라는 어디를 가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는 아침을 먹어야 산다고 해도 주위가 다 안 먹는 곳이면 달리 길이 없듯이 우리는 주변 상황과 별개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황사 없이 살고 싶어도 우리나라를 몽골 사막과 관계없는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황사 피해를 안 보고 사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견뎌내는 수밖에 없지요. 이 세상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이고 그 운명체 속에 나에게도 꼭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이 주어졌는지 모릅니다. 그 역할을 내가 수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삶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생에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무르익어 가는 이 봄날에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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