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남자 있나 봐요
내안에 남자 있나 봐요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7.02.23 1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내안에 남자 있나 봐요.”

그녀는 분명 여자다. 남편도 있고 자식도 삼남매를 두었다. 긴 머리를 멋스럽게 틀어 올리고 화장도 곱게 하고 다닌다. 글을 써서 책도 발간하고, 서예도 열심히 쓰면서 어느 사찰의 합창단에서 고운드레스를 입고 노래도 부른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의심하는 부분은 남자보다 더 의리가 있고 풍물을 배워 거리공연에 열심히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전환증환자인 것을 숨겨온 것인가.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불일치했다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도 내면의 남성성이 강해서 남자가 하는 직업을 선택해 성공한 것인가 보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3년 전, 그녀가 뻥튀기장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설마 했다. 그것도 작은 트럭을 끌고 다니면서 지역의 장날이나 장사가 잘될만한 동네를 찾아다닌다 했다. 여자가 트럭을 몰고 다니며 뻥튀기장사 하는 것을 본적이 없는지라 하필이면 노상에서 하는 일을 하려느냐고 물으며 속으로는 그냥 하는 말이겠지 했다.

그녀는 씩씩하게 트럭위에 기계를 설치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쌀이나 강냉이 등을 튀겨주는 것이 아니라 동그랗게 나오는 뻥튀기를 탁탁거리며 트럭위에서 튀겨 팔았다.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했다. 일 년이 지나자 모은 돈으로 시장 안에서 제법 큰 가게를 얻어 뻥튀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강정도 만들어 가며 품목도 늘려갔다. 그런데 쌀도 튀기고 강냉이도 튀기는 진짜 뻥소리가 크게 나는 기계를 설치해서 손님들이 가져오는 쌀과 강냉이 등을 튀긴다고 했다. 가게에 들를 때마다 그녀의 차림새는 항상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어서 향 좋은 차 한 잔 탁자 위에 놓고 독서삼매경에나 빠져 있을 여인만 같았다. 기계 옆에 서있는 아이들에게 귀를 막게 하고 `뻥이요' 외칠 여인으로는 도저히 어울리질 않는다.

그녀에게도 풍파는 많았다. 여자로서 받는 아픈 상처들이 견디기 힘들어도 내색 없이 속으로만 삭혔다.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았어도 이해하고 용서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했다. 선택의 어려운 고비가 생겨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람과의 의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인내심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들어 만족 할 만큼 성공했다. 그녀의 여성성은 남성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요즘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그걸 따지려 들다간 본전도 못 찾을 만큼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남자가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것은 다반사고, 여자도 남성위주의 직업전선에 포진해 있다. 세태가 변해가니 당연한 일이다. 허나 정체성은 모호해졌어도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아무리 직업의 경계를 넘나든다 해도 무엇보다 변하지 말아할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깨지 말아야 할 굳은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의리를 모르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있고 그에 못지않은 여자도 있어 한심하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그녀는 남자의 기질을 발휘해 씩씩하게 뻥튀기기계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더 단단한 심지가 박혀있는 그녀의 모습이 봄날의 햇살보다 더 눈부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