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라는 이름의 두 얼굴
‘훈육’이라는 이름의 두 얼굴
  • 오보람<청주청원署 여성청소년계 순경>
  • 승인 2017.02.1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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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오보람

#1. 친부가 등교준비를 하는 아들 A(13)의 가방을 확인하던 중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효자손을 이용하여 A의 종아리를 약 20회 때린 것을 비롯해 1년여 동안 4회에 걸쳐 A가 학업에 소홀하다거나 흡연을 한다는 이유로 때렸다.

#2. 부산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 갑(54)이 자신의 반 학생 20여명을 불러 “을(10세)과 놀지 마라, 투명인간 취급해라”라고 했으며, 또 “을에게 단돈 100원이라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사실이 있으면 모두 적어 내라”고 지시했고 이에 한 학생이 “700원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다.”라고 답하자 한 달 동안 반성기간이라며 을을 교실 뒷자리에 앉게 했다.

이 두 사례는 훈육 혹은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법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첫 번째 사례에서의 친부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서울서부지방법원 2014 고단 3484), 두 번째 사례에서 교사는 벌금 200만원(대법원 2016도 2860호)을 각각 선고받았다. 과거에는 가정 내의 문제, 부모의 자녀에 대한 훈육 차원의 처벌로 쉬쉬하며 넘어갔을법한 사안에 대해서 아동학대를 적용해 엄중하게 다룬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꼭 때리지 않아도 째려본다거나 욕설을 한다거나 투명인간처럼 방치하는 등 정서적인 학대도 아동학대로 보아 처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실 지금처럼 자녀교육의 열풍이 뜨거운 시대는 일찍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년 전에 유행했던 치맛바람이라는 말을 요즘에는 헬리콥터맘이 대신하고 있다.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면서 온갖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이르는 말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나 관심과 사랑이라는 말로 자녀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2015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조사한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행위자의 79.8%, 즉 10명 중 8명은 부모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며 부모 양육방식이 아동학대가 될 수 있고,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부모의 양육행동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동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 의해 보호와 지지를 받으며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환경 안에서 바람직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지만 모든 아동이 부모로부터 바람직한 양육과 지지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어릴 때 부모에게 욕도 듣고 맞고 자랐다'라는 식으로 학대를 합리화하는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부모는 자신의 양육법을 돌아보고 혹시나 무의식중에 자녀에게 고통을 주진 않았는지, 훈육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해도 그 수단이 정당성을 잃진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모로부터, 시설의 교사 등으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아동들이 있을 것이다. 일부 가해자들은 적절한 교육을 통해 교화가 가능할 것이나 심각한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물리적·강제적으로 이 사슬을 끊어주지 않으면 학대행위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동도 엄연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는 존재임을 우리 사회가 인식하는 것, 이것이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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