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대망론, 무너진 자존심
충청권 대망론, 무너진 자존심
  • 정규호<칼럼니스트>
  • 승인 2017.02.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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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時 論 /
▲ 정규호

순박한 고향사람의 입장으로만 보면 지난 3주일의 조바심이 일장춘몽, 자존심마저 깡그리 무너지는 허무함이 분명하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표현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유아독존식 태도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이라는 구절이 본인을 질책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권을 포함한 나라 전체를 겨냥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충청권 대망론을 거론하며 신기루 같은 환상을 쫓아다니던 허상은 갈수록 추락하는 여론조사 지지율과 더불어 기대했던 고향 주민에게 커다란 상처만 남긴 꼴이 되고 말았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10년 동안 어쩌면 그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뿐일 수밖에 없는 작금의 `헬조선'의 상황에서 위인전을 방불케 하는 전기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거나, 마치 성지처럼 출생지를 치장하는 신격화로 충청인들에게 그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대통합'이거나 `정치교체'와 같은 구호는 맞지 않는 시대임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민주 대 비민주, 또는 종북 좌빨대 보수꼴통의 갈등을 극복하겠다는 `대통합'보다 더 절실한 것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나라에 대한 국민적 갈증이다. 그리고 용기와 슬기를 모아 구시대를 청산하고 갈수록 깊어지는 불평등과 불균형의 늪에서 국민을 구해낼 신념과 혁신의 시대임을 그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세계 대통령'운운하며, 지역 연고에 파묻혀 충청권 대망론을 말하거나, 그런 시류에 휘말려 무조건 추종을 했던 정치인들의 충격은 그들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따라 어쩌면 당연한 자괴감이겠다.

그러나 지역갈등의 적폐를 뻔히 알면서도 그를 기다려왔고, 환호했으며 막무가내로 설레였던 지역 주민의 실망 역시 상처받은 자존심만큼의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유엔은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의 안전한 미래를 지향한다. 따라서 지구촌 외교의 중심인 유엔 사무총장은 인종 및 종교의 갈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인류의 인권과 극심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개발협력, 환경문제, 전쟁방지와 평화유지 등의 각 나라의 국익을 초월하는 권능을 필요로 한다.

각 나라의 차원에서 외교는 지극히 국익 우선이고, 따라서 당연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정치를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정치 지향적 체계로 설명한 바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보편적 질서를 지향하면서 (강대국에 의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일과 국민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그가 출마를 포기한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려와 조바심으로 지난 3주 동안 가슴 졸였던 고향 사람들이 더 큰 치욕과 절망을 얻기 전에 `이만 하면 됐고', 또 지금이라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편협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된 것 역시 용기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최고 권력의 대통령보다도 더 넓고 깊은 마음과 절제를 아는 진정한 이웃, 한국 정치를 뛰어넘어 세계 인류 사회를 위해 백의종군하는 참 어른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더 일찍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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