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병 청문회
울화병 청문회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12.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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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소득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지루한 공방이었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는 증인들, 이들의 철벽 방어에 막혀 이렇다 할 `카운터블로'를 날리지 못하는 국회의원들. 요즘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장 모습이다. 그나마 박영선 등 몇몇 의원들의 활약은 다소나마 위안.

국민이 화가 나는 건 증인들이 초등학생이 봐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사실을 잡아떼는 모습에 TV 앞에 있던 시청자들은 울화병이 날 지경이다.

그 중 한 예가 정유라 특혜 입학 관련 청문회장에서 후안무치의 얼굴을 보여 준 이화여대 3인방. 최경희 전 총장, 김경숙 전 체육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등이다. 이들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시종 황당한 답변으로 일관, 보는 이들이 헛웃음마저 짓게 만들었다. 최경희 전 총장의 발언은 그중 압권이다. 그는 15일 4차 청문회에서 도종환 의원이 “정윤회가 권력 실세라는데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전공이 이공계라서 그런지 그렇게 까지는 잘 몰랐다”고 답해 청중이 실소하게 했다. 최순실씨를 총장실에서 만난 것이 특혜를 준 증거라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총장은) 방문객이면 누구나 만날 수 있다'며 사실과 동떨어진 답변을 했다.

서로 엇갈린 증언들을 하면서도 얼굴 한번 붉히지 않는 뻔뻔한 모습도 보였다.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 지원한 사실을 최경희 전 총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은 김 전 학장과 남궁 전 처장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아 둘 중 하나는 위증 혐의를 벗기 어렵게 됐다.

국회의원들의 추궁에 김 전 학장은 남궁 전 처장에게 정씨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한 바 없다고 강변했으나 남궁 전 처장은 2014년 9월 15일~22일 사이에 해당 내용을 김 전 학장에게 전달 받았다고 반박했다.

청문회장에서의 이 같은 증인들의 오리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곧 있을 특검 수사에 대비, 청문회장에서부터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는 `자폭'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진행될 특검 수사다. 검찰은 그동안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증거 자료를 확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범죄의 핵심 혐의자들이 증거 자료를 없앨 기회와 시간을 줬다.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이 떠오른 것은 이미 지난 7월 26일. 언론의 보도로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비리 의혹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은 무려 3개월여가 지나서, JTBC가 태블릿 파일을 폭로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시늉만 했다. 사건의 핵심 혐의자인 최순실이 귀국하자 검찰은 황당한 논리로 그를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고 31시간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했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라는 해괴한 이유였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서도 그가 고발당한 지 무려 100여일이 지난 뒤에서야 자택을 압수 수색, 아무런 증거가 남아있지 않은 `깡통 휴대폰'만 챙겼을 뿐이다.

청문회장에서 보여진 범죄 혐의자들의 당당한 자신감. 특검 수사에서도 결정적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 그 진실들이 묻힐까봐 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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