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달, 업종별 희비 교차…혼술·혼밥족 늘었다
김영란법 한달, 업종별 희비 교차…혼술·혼밥족 늘었다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6.10.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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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오는 28일로 시행 한 달을 맞는다. 그간 업종 간 희비는 극명히 갈렸다. 국민들의 생활 패턴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농축산·골프·화훼·호텔·외식업 '된서리'

김영란법이 농축산·골프·화훼·호텔·외식업 매출에 끼치는 영향은 컸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관공서 밀집 지역인 서울 강남과 여의도 음식점의 37%가 김영란법 시행 후 매출이 줄었다. 고급 음식점으로 꼽히는 일식집(47%)의 타격이 가장 컸다. 한정식(33%)과 한우전문점(22%)도 손님이 급감해 폐업 지경에 놓인 곳이 상당하다. 역대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잘 알려진 종로구 수송동의 한정식집 유정(有情)은 60년 만에 문을 닫고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바꿨다.

골프장과 호텔업계도 속을 태운다. 김영란법 시행 후 전국 골프장의 이용객이 약 10% 감소한 것으로 대한골프협회는 보고 있다. 콧대 높던 호텔 역시 음식 가격을 대폭 낮춘터라 손님이 늘었지만 매상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화훼업계는 대목철을 맞고도 울상이다. 꽃 판매량이 한 달새 40~60% 가량 줄어서다. 경조사용 화환과 난의 판매량은 최대 80%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꽃의 70~80%가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경조사용이라는 점에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 법인카드(법카) 사용은 확연히 줄었다. NH농협카드 분석에 따르면 법카 평균 결제금액은 법 시행 전 6만732원에서 시행 후 5만7087원으로 6% 감소했다. 특히 고급 음식점으로 꼽히는 일식집의 평균 이용금액은 9%(9만6450원→8만7600원) 넘게 줄었다.

반면 각자내기(더치페이)는 익숙해져 가는 추세다.

◇혼술·혼밥족 늘어 편의점·치킨집 '반사이익'

서울 도봉구에 사는 영업사원 전모(32)씨는 퇴근길마다 집 앞 편의점에 들른다. 4병에 1만원하는 '세계 맥주 세트'를 사기 위해서다. 잦은 회식 탓에 김영란법 시행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전씨와 같이 혼술(혼자 술 마시기)·혼밥(혼자 밥 먹기)·혼곡(혼자 노래 부르기)족도 덩달아 많아졌다. 괜한 오해를 사거나 구설에 오르는 자리를 원천 차단할 요령인 셈이다.

편의점은 사교적 모임이 자연스레 줄면서 반사이익을 얻었다. 편의점 씨유(CU)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이달 21일까지 냉장안주 매출이 전년동기에 비해 무려 87.1% 늘었다. 법 시행 직전(9월27일)까지 증가율(전년동기대비 38.1%)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도시락 매출은 3.4배로 늘었고, 술도 주종에 관계없이 두 자릿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저렴한 가격에 술까지 곁들일 수 있는 치킨·족발집도 호조를 띈다. 홈술(집에서 술 마시기)족이 늘면서 배달량도 많아졌다고 업계는 말한다.

회식이 줄고 취미생활 또는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학원가도 호황이다.

◇김영란법 특강에 몰리고 앱도 깐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 인원은 4만개 기관 40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이 부정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건네면 법에 따라 모두 처벌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 국민이 적용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무와 청탁의 경계선이 애매한 탓에 김영란법 특강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김영란법 관련 애플리케이션(앱)도 꾸준히 인기다. 신생 벤처 루트앤트리가 만든 '영란이: 본격 김영란법 사용설명서+일지 작성' 앱의 다운로드 건수는 지난 25일 기준으로 약 4만8000건(안드로이드 4만2000건·아이폰 5000여건)에 달한다. 이 회사는 국내 대형은행 1곳에 맞춤형 앱을 제작·납품하기도 했다.

대표 박찬현씨는 "법 조항이 포괄적이고 적용 사례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사용자들의 업데이트 요구도 많다"면서 "최근에는 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여러 곳에서 맞춤 앱을 의뢰할 정도"라고 전했다.

◇대학가는 학칙 개정 바람

대학가는 졸업 전 조기 취업생의 출석일수를 인정하던 '취업계'가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학칙 개정 바람이 불었다. 취업계란 4학년 2학기 재학생이 취업한 경우 출석일수를 따지는 대신 낮은 수준의 학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편의를 제공하는 대학가의 관행이다.

숙명여대와 이화여대, 세종대 등이 이미 학칙을 바꿨다. 경희대와 한국외대는 학칙 개정을 진행 중이다.

학칙 개정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한 대학들도 있다. 연세대는 교수의 재량으로 조기 취업생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게끔 수업운영지침을 손봤다. 서울대는 학생의 취업 정보를 교수에게 전달하는 대상을 본인에서 교무처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혼란 언제까지…"취지 훼손 말아야"

법 시행이 한달이 다 되도록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회원 수 251만여명의 육아커뮤니티 사이트인 '맘스홀릭베이비'에 게시된 김영란법 관련 글만 100여 건이 넘는다. 댓글까지 포함하면 수 백여건에 이른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지난 한 달간 문의가 들어온 유권해석은 총 9351건이다. 홈페이지에는 지난 26일 오후 5시 기준 4135개의 문의 글이 올라와있다. 하루 평균 150여개 문의가 올라오는 셈이다. 전화 상담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지만 답변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검·경에도 신고가 숱하게 접수되고 있긴 하나 대부분이 출동 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상담 전화여서 서면신고를 안내하거나 정부민원안내콜센터(110)로 연결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나 "수사기관으로서도 혼란스럽다. 사회 상규 속에 법이 존재하는 것인데 시행착오라 생각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급기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청탁금지법 해석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달 말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법 효과는 최대화하면서 혼란은 최소화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존의 관행을 바꾸기 위한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관련 부처가 조속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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