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아픔 한 조각
툭! 아픔 한 조각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10.06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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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7년 만이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처럼 그녀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다. 천안의 백화점 시계매장에서 보기로 했다. 터미널과 연결된 백화점이라 버스를 탔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진열장의 시계들에 눈길을 떼어주고 있었다. 갖가지 시계들이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늘 반짝이던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던 그녀처럼.

시계를 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따듯한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그녀였다. 부천에서 한 시간을 반을 달려 왔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린 서로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의 머리엔 흰빛이 간간이 보였다. 세월을 담고 있는 그녀가 당당해보였다.

난 슬쩍 농을 던졌다.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니? 사람을 만날 땐 향수는 못 뿌려도 분이라도 바르고 나오는 게 예의야. 더구나 오랜만에 보는 사람에겐 말야” 그녀는 내 농을 아무렇지 않게 쓸어 담으며 웃었다. “나 원래 예의 없잖아. 알면서!”

점심을 먹으며 지나간 날들을 식탁보 펼치듯 펼쳤다. 아리게 흔들리던 날들. 술 취한 아버지의 포악질을 피해 우리 집으로 날아들곤 했던 그녀. 거리에서 풀빵 장사를 하며 단단하게 영글어 가던 그녀. 가끔 결석을 하던 그녀. 4년 장학생으로 가기 위해 대학을 낮춰 가야 했던 그녀.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아픈 가정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그녀. 이제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그녀.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찬거리로 삼으며 우린 밥을 먹었다.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일 년 같은 반이었다. 우린 비 오는 날이면 절친이 되었다. 느닷없이 비 오는 날에는 난 비를 맞고 하교를 하곤 했다. 다른 엄마들은 학교에 우산을 들고 아이를 맞으러 왔지만, 엄마가 늘 일을 하셨기에 비 오는 날은 내 온몸이 우산이 되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꼭 내 곁에 있었다. 우리는 운동화를 벗어 손에 들고 참방거리며 빗길을 걸었었다. 가다가 멈춰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한참을 떨어지는 비를 보기도 했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내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모른다.

그녀의 생은 입체적이었다. 서른이 넘어 원하던 대학에 다시 편입해서 임용고시를 본 그녀는 내가 있는 청주로 발령을 받아 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 접고 필라델피아로 떠난다고 전화가 왔다. 이유를 묻자 남편이 졸업했단다. 공학박사였으나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던 남편을 설득해 한의대를 편입시켰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아닌 가장 노릇을 하며 엄마처럼 그를 지원했었다. 그 시간 동안 내색은 안 했지만 얼마나 사는 게 버거웠을까. 그런 그녀가 자신의 생에 휴식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잠시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홀연 교직을 정리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났었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가 대견하다고 서로 입을 모았다. 커피를 마신 후 그녀는 3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난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털털거리며 떠나는 버스 뒷 꽁무니에서 아릿한 아픔 한 조각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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