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자라려면 잠자리 1만마리가 필요하다
한 아이가 자라려면 잠자리 1만마리가 필요하다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6.10.05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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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생거진천휴양림 숲해설가>

나뭇잎 뒤에 어린 노린재들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사는 걸 보면 어릴 적 온 동네 아이들이 함께 놀던 공터가 생각납니다.

그 공터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돌봄교실 쯤 되는 거예요. 돌봄교실의 큰 언니들은 자기의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공기도 하고 심지어 고무줄도 잘했지요. 노는 걸 잘 못해서 어느 팀에서도 원하지 않았던 저를 깍두기로 끼워줘 혼자 두지 않은 것도 놀이터의 전통이었어요. 게다가 그 깍두기를 오야(오야붕. 대장이라는 뜻의 일본말)라고 칭했던 걸 보면 좀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오히려 보호해주고 격려해주던 당시의 마음 씀씀이가 그려집니다.

손등 위에 뽀얗게 흙먼지 올라앉도록 흙장난을 하며 놀다가 굴뚝연기에 놀라 튀어나오던 귀뚜라미를 잡으며 놀다가 누구야, 밥 먹어라, 불리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갔지요. 맨 처음 불린 아이는 아쉬워 투덜대고, 다 돌아가도록 마지막까지 혼자 남은 날에는 공터 저쪽으로 내려앉던 어둠의 실체를 봐야 했습니다. 시커먼 산에서 내려온 어둠이 부유하는 것을 보면 갑자기 무서움증이 더럭 일어 꽁무니가 빠지도록 한달음에 달렸어요. 그러나 엄마가 오지 않은 게 분명한 빈집에 들어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나는 그만 불 켜진 옆집 마당으로 들어가 그 집 식구인 듯 스스럼없이 함께 저녁을 먹고는 했지요. 한 아이가 자라려면 한 마을이 통째로 필요하다잖아요.

그렇게 자란 제가 지금은 숲지기가 되어 도시에서 온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꽃 같은 존재들이라 모두 예쁘지요. 이 아이들 중 누구의 마음 밭에 숲의 씨앗이 심어질까요. 아직은 모르지만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면 나의 고향마을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합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숲은 함께 노는 공터가 아닌 어쩌다 한번씩 시간을 내서 체험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어요. 간혹 흙과 곤충을 더럽고 비위생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요. 나는 애들 앞에서 보란 듯이 고라니 똥을 만지고 비비고 부수며 냄새 맡아요. 고라니 똥에서는 똥내가 아니라 구수한 풀 내가 나잖아요. 만나는 곤충들을 일일이 손에 올려 인사를 나누고 애벌레를 조물거리기도 하지요. 그들이 더러운 게 아니라 모두의 친구라는 걸 알게 하고 싶어서예요. 한 번 용기를 내어 곤충과 손잡아 본 아이는 그 보드랍고 귀여운 작은 친구와 아는 사이가 됩니다.

때로는 아이들의 서툰 손끝에 잠자리의 날개가 찢긴들, 여치의 다리 하나가 떨어진들, 나는 자꾸 아이의 손에 곤충의 손을 쥐여줍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고 마을이 통째로 필요한 것처럼 한 아이가 자라려면 곤충 1만마리쯤 필요한 거라고 …. 그들이 벌레 목숨이라 하찮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1만마리의 곤충을 만나며 자란 아이가 다시 이 숲으로 돌아와 곤충들을 지키고 숲을 지킬 거라는 믿음에서예요.

날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겨울 준비를 하느라 숲 속의 곤충들도 바빠요. 구석구석 곤충들의 겨울채비를 살피느라 저도 꽤 바쁜 날들입니다. 어느새 하나 둘 보이지 않아요.

그들이 언제까지나 이곳에 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아아, 나는 헤어지기도 전에 다시 만날 봄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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