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영장 없이 압수한 밀수품 '유죄' 증거로 못 써"
대법 "영장 없이 압수한 밀수품 '유죄' 증거로 못 써"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6.08.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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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6kg 밀수 혐의 무죄…특가법상 관세 혐의만 '유죄' 확정
영장없이 압수한 밀수품의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확보한 게 아닌 만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출입물품 검사나 보관 등 통상적인 업무가 아니라 관세법 위반이나 마약 사범과 같은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를 할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관세)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향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모(4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다만 서씨의 특가법상 관세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 따라 징역 3년에 벌금 4억4600여만원을 확정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김모(44)씨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징역 3년에 벌금 4억46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며 "법리 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고 밝혔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의 중국 현지공장에서 근무한 서씨와 김씨는 지난해 3월 중국동포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기로 하고 회사 제품 컨테이너에 가짜 발기부전치료제 70만여정과 필로폰 6kg(시가 200억원 상당)을 몰래 들여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물품이 수입국 영토에 도착해 하역되기 전에 미리 수입신고하는 '입항전수입신고' 제도를 악용했지만, 세관의 통관검사 과정에서 적발돼 범죄가 드러났다.

당시 물품을 검사하던 세관공무원들은 수입신고가 안 된 발기부전치료제가 든 상자 20개를 발견하고 이를 뜯어 확인하던 중 별도로 필로폰이 포장돼 있는 것을 적발했다.

이후 검찰에 밀수품을 인계했지만, 세관공무원들은 사전에 영장을 받지 않았다.

1심은 이들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각각 징역 5년에 벌금 17억8700여만원을 선고했다.

서씨 등은 재판과정에서 '중국산 잣을 밀수입한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뿐 발기부전치료제와 필로폰을 밀수입한다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중국 현지 잣을 20kg 밀수할 경우 국내와 가격 차액이 40만~9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서씨가 밀수품 1상자(20kg)당 대가로 받은 30만~35만원은 지나치게 고액"이라며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불법적인 물품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컨테이너 안에 발기부전치료제와 필로폰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용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심은 밀수 범죄를 적발한 세관공무원이 영장 없이 밀수품을 압수해 검찰에 임의로 제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세관공무원이 관할 구역 내에서 수출입물품을 검사하고 점유를 취득하는 모든 행위를 일률적으로 행정조사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 강제처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관공무원의 통상적인 통관 업무가 아닌 관세법 위반이나 마약 사범 등 구체적인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에 이르렀다고 인정되면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심은 다만 서씨 등이 밀수품에 중국산 발기부전치료제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보고 특가법상 관세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심은 "중국산 잣의 국내 유통과 판매에 따르는 영업비용 등에 비해 운반 대가가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고 수확시기와 상관없이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밀수입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밀수품에 중국산 발기부전치료제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인식했거나 이를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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