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70>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7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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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산맥과 대초원

광활한 평원, 그 길에선 시간도 쉬어간다

차창 가엔 천산산맥이 지나가고 한편으로 바다 같은 대초원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천산 기슭에 푸른 자라나스쿨이 펼쳐지고 있다. 쿨은 우리말로 바다(海)에 해당하는 말로 중국이나 카자흐스탄에서 큰 호수를 바다(海)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대평원 위에 끝 없이 펼쳐진 호수 대평원 위에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만나면 동해바다를 바라볼때의 그 광막함이 느껴지곤 한다. 호(湖)를 해(海)로 부르는 이유를 끝없는 대륙의 초원이나 내륙지방에서 그 크기를 육안으로 다 볼 수 없는 거대한 호수를 만나면 이해가 된다. 호수를 배경으로 나무숲 속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1시간 동안 끝없는 초원을 달리자 갈대밭으로 이어지는 초원과 푸른 알라쿨 호수가 나타났다. 짙푸른 호수가에 녹색 풀들이 자라는 매우 큰 호수였다. 중앙아시아 대평원에 펼쳐지는 호수들은 끝없는 사막처럼 매우 큰 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호수의 개념과는 규모가 다르다. 시간을 1시간 늦추었다. 이곳의 시간은 베이징의 시간보다 1시간 늦기 때문이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번에 거쳐 시간을 수정하였다. 저녁 7시 30분 이곳에서부터는 천산의 모습이 푸른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벌거벗은 나신을 버리고 푸른 녹색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초원의 풀을 키우고 있다. 천의 얼굴처럼 수 없이 변하는 다양한 천산의 모습을 감상했다. 하나의 산맥이 이렇게 다른 모습과 표정을 지으며 대평원 위에 허리를 뻗고 고요히 누워있을까 하는 경이로움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호수는 마치 바다처럼 끝이 없고 고요하다. 저녁햇살 천산의 얼굴이 호수에 담겨있다. 중국대륙 전역에 걸쳐 펼쳐진 황토 흙과 메마른 사막 벌판과는 정말 판이한 지형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끼고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호수 위에 섬 하나가 떠있다. 끝을 알 수 없는 넓이로 저녁노을에 잠긴 섬이다. 콕크두마 마을 간이역 주변에는 몇 채의 집들이 천산을 배경으로 알라쿨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저녁노을에 잠긴 너무나 깨끗하고 단아한 마을이다. 초원은 너무 고요하고 평화롭다. 밤 8시가 다 되어도 태양은 아직도 높이 솟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창가에 다가서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니 따사로운 풍경들이 바람처럼 밀려오고 있다.

바다 같은 호수와 수목이 우거진 마을과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초원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대초원과 경작하지 않은 채로 방치된 광대한 땅들을 보니 카자흐스탄의 넓은 영토가 매우 부러울 뿐이다. 광활한 대지와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원시의 초원들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메마른 사막의 열기로 채웠던 가슴이 푸른 초원으로 다시 자라나고 있다.

이 넓은 초원에 경작지라곤 가끔씩 눈에 띄는 작은 간이역 부근의 마을 주변을 제외하고는 대평원은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원시 초원 그대로의 모습이다.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달리는 승용차 한 대를 보았다. 바다 같은 초원을 보니 유목생활을 했던 북방민족들의 생활과 그들이 사는 모습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말이 있다면 대평원을 마음껏 질주할 수 있는 교통 로이자 가축들의 방목지이기 때문이다.

밀이 익은 황금빛 벌판과 저녁 햇살로 천산산맥은 푸른 음영을 띤 채 의젓한 자태로 열차를 내려 보고 있다. 초원의 누렇게 마른풀들로 인해 양떼나 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마른 풀잎의 황금색과 푸른 초원들이 어울린 노을진 저녁황혼의 정취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독특한 풍경이다. 중국처럼 불모의 사막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초원이 사막을 대신할 뿐이다.

헐벗고 메마른 천산을 뒤로하고 푸르고 정감 있고 기품 있는 천산산맥의 달라진 모습을 마음껏 즐겼다. 이 방대하고 끝없는 초원을 몇 시간씩 달리면서 얼마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GNP는 우리보다 훨씬 낮지만 마음은 우리보다 더 풍요로운 나라라고 생각된다. 땅 한 뙈기 더 차지하려 사력을 다하고 한 평에 수천 수백 만원씩 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해보니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땅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는 것 같다. 넓은 해바라기 꽃밭들과 소와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들의 등 너머로 저녁 노을빛 햇살이 젖어들고 있다.

저녁 7시 40분 베스컬 마을에 기차가 도착하자 간이역 주변은 과일과 음료수나 빵 등을 파는 사람들이 기차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초원에서 보면 주민이 1000여명 되는 꽤 큰 마을이라 한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초원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밤바다처럼 누워있다. 지평선에 해는 사라졌지만 초원의 아득한 저 끝에서 저녁노을이 마지막 잔영을 희미하게 뿌리고 있다. 노을의 잔영을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버스컬역에서 아이리기의 사촌 자매가 탔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시골마을 소녀는 한동안 얘기하다 옆 칸으로 갔다. 아이기린은 사촌자매를 알마티로 구경시켜주려 함께 가는 모양이다. 알리는 내가 얼마나 봉급을 받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놀라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자기 아버지는 학교 교장인데 150$을 받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평선 너머로 눈썹같은 초승달이 내밀어

지평선 너머로 눈썹같은 초승달이 내밀고 있다. 우리는 꽉 찬 보름달을 좋아하지만 이슬람은 초승달을 진리의 시작이라는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초원에 떠 있는 초승달이 오늘따라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막막한 사막이나 초원에서 살며시 내민 여인의 눈썹 끝 같은 초승달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만월이 아니라도 길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초승달만이라도 그들에게는 진리로 이끄는 빛의 시작이며 신앙심을 일으키는 경외감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열차여행이다. 역무원의 딸린 아이기린은 간이역 이름이나 마을 이름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알리 같은 활기찬 소녀들과 대화하다 보면 여정의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초원 들판이 조금씩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이 아쉬워 복도 창가로 나와 흐릿해지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바다 같은 이런 대평원을 만주에서 다시 찾아올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가슴에 앙금처럼 고였다. 말을 타고 천릿길을 무작정 달려보고 싶은 것이 학창시절의 꿈이었는데,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기차로 달리게 되어 감회가 깊었다. 꿈을 꾸는 자만이 그 꿈을 이룩할 수 있다 했던가.

천만리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우즈베크 공화국까지 달려본다는 상상을 해보니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벅차오른다. 어린 시절 막연한 꿈이었지만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한 달 정도 달려보고 싶었다. 푸른 초원을 달리고 달려서 지평선을 가로지르고 싶은 그런 상상 속의 꿈같은 희망을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었다. 유년 시절의 그 꿈의 일부를 말 대신 배낭을 메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그런 여정을 시도하고 있다. 초원을 호령하며 말을 달리던 고구려 후예들의 피를 이어받은 그런 감성이 내 밑바닥 속에 아직도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개성과 평양이 개방되고 신의주를 통해 만주벌판과 중국대륙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개통된다면 분단으로 갇힌 우리의 사고와 영토의 개념이 확장되어 좀 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민족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대평원을 바라보니 내 가슴도 평원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열리고 있다.

악투베 역을 지날 때 몇 명의 학생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한국 사람들이라 그런지 호감을 표시하며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싶어 했다. 알리가 대신 통역을 해주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카자흐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순박하고 친절한 것 같다. 새로운 땅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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