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문 앞에서
오월의 문 앞에서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6.05.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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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긴 생머리가 바람에 찰랑댄다. 눈부시다. 몇 걸음 앞서가다 돌아보는 얼굴로 오월 햇살이 담뿍 쏟아진다.

이마에 손 그늘을 드리우고 잠시 선 아이. 입가로 번지는 엷은 웃음엔 풋풋한 젊음이 싱그럽다. 공연히 콧날이 시큰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리 가슴 먹먹해지건만 잠언처럼 날마다 듣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들이 가끔은 아프다.

이십대 중반을 갓 넘긴 남매와 나란히 숲길을 걷는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두 아이와 이리 한가로운 오후를 거닐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큰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무 그림자를 따라 운주 산성으로 가는 길. 짙어가는 푸름 속 간간이 피어 있는 연분홍 철쭉이 곱다. 밀물처럼 몰려와 가슴 흔들던 봄꽃 진 숲길엔 어느새 오월의 꽃들이 핀다. 오동나무에도 등나무에도 은은하고 우아한 보랏빛 꽃들이 조롱조롱 달렸다.

이따금 미나리 아재비꽃잎도 파르르 바람을 탄다.

낮은 소리로 도란도란 숲으로 스며들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가만히 걸음을 멈추었다. 낮은 포복으로 철쭉 그늘을 지나던 고양이도 멈칫 얼음이 된다. 사람과 고양이의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정적이 흐른다.

그 고요 속으로 제비나비가 한 마리 팔랑팔랑 날아 들어왔다. 고양이 이마에 앉을 듯 코끝에 닿을 듯 간질이는 나비의 현란한 유혹에 고양이가 어찌할 줄을 모른다. 나비에 나비가 정신을 빼앗겼다.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蝶]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철쭉 아래 제비꽃도 피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선물이라며 아이들이 까르륵 웃는다. 귀한 선물이다. 패랭이꽃만 있으면 금상첨화련만. 고양이가 나비를 따라간건지 나비가 고양이를 따라 간건지 수풀 속으로 스며들고 다시 벚나무 잎새 부비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때론 시대의 담론에서 벗어나 소소한 즐거움에 젖어보는 하루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고 말하고 웃고 먹는 평범한 일상이 요즘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숙제처럼 무거워져 버렸다.

콧잔등에 땀이 살짝 배일 무렵 산성 입구 고산사에 들렀다. <백제루>라는 다소 생경한 이름을 가진 누각이 눈에 들어온다. 운주산성은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주류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는 말을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산사는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과 나당 연합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는 사찰이라고 한다.

한가로운 마음은 어디 가고 숙연함이 묵직하게 자리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마다 이름 없는 이들이 사력을 다해 그리고 간 삶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음이다. 문득 나는 어떤 무늬를 그리고 있는 걸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고산사 아래 맑고 영롱한 물방울을 튕겨내는 물레방아 앞에서 오월을 생각한다.

기쁘고 행복하고 아픈 기념일들이 함께 어우러진 오월. 오월의 문 앞에만 서면 원죄처럼 시대가 주는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지만 그래도 신록처럼 푸르게 살아야겠지.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셀카놀이에 여념 없는 아이들을 보며 때론 기념일이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잊고 살다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고 추모할 이들을 떠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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