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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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0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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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한 혜 영

내가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저기 서성댔을

저 남자를 꼭 빼어 닮은 아저씨를 본 적 있다

바지 구겨질까 전전긍긍

쪼그리는 법도 없이 벌을 서던 그 아저씨

흰 바지에 칼주름 빳빳하게 세워 입고

밤만 되면 은하수처럼 환하게 깨어나서

지루박 장단으로 가뿐하게 산동네를 내려갔던

내려가서는 세월 캄캄해지도록 올라올 줄

몰랐던 그 아저씨 청춘 다 구겨졌어도

바지주름만큼은 시퍼렇게 날 세운 채 돌아와서

서성거리던, 늙고 깡말랐던 전봇대를 본 적이 있다

꼭꼭 닫혀버린 본처 마음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그 아저씨

물음표로 무겁게 떨어졌던 고개 아래

불콰하게 익어가던 염치없음을 본 적 있다

저기

저 남자처럼 비까지 추적추적 맞으면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퓨즈가 나간 숲' 당선

2004년 <시조월드 문학대상 ><한국 아동문학 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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