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총알받이 된 의원님
4·13 총선 총알받이 된 의원님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6.03.21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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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2016년 4월 10일 폭풍우가 몰아치는 늦은 밤, 전라남도 완도군 어느 한 포구의 제방 위. 이곳 현장을 둘러보러 나왔던 군의원 A씨는 제방 옆 얕은 바다로 추락한 승용차를 발견하고 119에 긴급히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차 안에는 친구들과 함께 만취한 B씨 일행 3명이 있었다.

다행히 물이 빠지는 때인데다 119구조대가 신속히 출동해 일행은 모두 구조됐다. 당시 A의원은 해일에 대비한 제방 보수공사 현장을 홀로 점검 중이었다.

이튿날 오후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한 농가. 천안시의회 의원 C씨는 방안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있던 독거 노인 D씨를 황급히 업고 나와 차에 태우고 시내 병원으로 옮겼다. D씨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있던 상황. 조금만 늦었으면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어르신 잘 챙기기로 소문난 C의원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홀로 사는 노인들의 집을 방문, 말벗을 해주고 있다.

뜬금없이 혼자 생각해본 가상의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말이다. 지금 전국 기초의원들이 일제히 4·13 총선을 맞아 ‘전투병’으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21일 오전 천안시청 브리핑실. 주말에 공천이 모두 확정된 새누리당 예비후보 3명이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30분 후엔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같은 장소에서 또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 후보의 회견에는 각각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의원 10여 명이 배석했다.

앞서 이달 초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 현역 의원의 출마 기자회견에 같은 당 소속 지방의원 10여 명이 등장해 지지를 호소했다.

천안 뿐이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특히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나 현역 의원들의 기자회견장에는 해당 지역 기초의원들이 벌떼처럼 몰려 세를 과시하듯 ‘병풍’을 친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 선거라는 ‘전선’에 ‘총알받이’로 나서버린 모양새다.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런 볼썽사나운 꼴은 정치권이 지난 2006년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도 찬반양론이 부딪쳤지만 ‘국회의원의 시녀 전락’이 ‘정당 책임 정치 구현’이란 명분에 밀려 기초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돼버렸다.

이러다 보니 유권자들만 바보가 돼 버렸다. 지역 일꾼을 뽑았는데 일은 않고 엉뚱하게 선거운동이나 하고 있다.

더구나 내가 지지하지 않는 상대 당 후보의 운동을 하는 꼴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모든 기초의회가 선거 중에 휴업에 들어갔고 ‘의원님’들은 선거판에 투입돼 목숨 걸고 ‘주군’을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 2년 후 공천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풀뿌리 정치판이 이 지경이니 ‘민생’은 당연히 실종.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 폐지’는 지난 대선 때 여야의 제1 공약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야합으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유권자들보단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을 무서워해야 하는 현실. 언제 어디서나 주민을 위해 나타나는 슈퍼맨 같은 의원님을 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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