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4)
귀소본능 (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6.03.03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친구가 고향을 떠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였습니다.

그땐 너나없이 대도시를 선호했고 친구들 대다수가 서울로 갔어요. 그 친구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고향 떠난 지 45년 만의 귀향인 셈인데요. 돌아오려니 떠날 때만큼이나 설레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들을 위하여 여기저기 땅 보러 다니랴 집 보러 다니랴 분주한 나날입니다. 그러데 여간 만만치가 않습니다. 웬 귀농 바람이 불었는지 찾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알아보니 지난해 팍팍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농촌으로 돌아간 귀농·귀촌자 수가 4만4000가구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중에 40대 이하 젊은 층의 농촌 유입이 크게 늘었답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치솟는 주거비용과 교육비 등 경제적 요인 등이 농촌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는 분석입니다.

귀농·귀촌 인구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성공 사례는 드물 다하네요.

그만큼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로 치밀한 준비와 탄탄한 전략만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랍니다. 여기에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는 철새에서부터 연어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부름을 받은 야생동물들이 사계절 내내 찾아오는 생명 네트워크의 중심지입니다.

지구를 무대로 기적처럼 되풀이되는 동물들의 거대한 귀향 행렬, 이 위대한 자연의 명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3A 1이란 가락지를 매단 재두루미가 10년 이상 철원 아이스크림고지를 찾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매년 3A1 재두루미는 시베리아 습지에서 새끼를 데리고 2000㎞를 날아와 월동합니다.

하늘 위 화려한 군무를 수놓는 가창오리와 떼까마귀 또한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집단비행을 칩니다.

호주에서 시베리아로 1만5000㎞를 비행하는 도요새에게 한국의 서해 갯벌은 체력을 보충하고자 쉬었다 가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합니다. 본능의 명령에 따라 지속하여 온 철새들의 대이동은 마치 GPS가 내장된 듯한 지리학의 박동을 느끼게 합니다.

자연의 순리대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때가 되면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한 생명은 어김없이 고향인 모천(母川)으로 돌아오죠.

봄이 되면 먼바다로부터 황어와 은어, 열목어의 귀향 행렬이 이어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북태평양을 떠돌던 연어들이 강원도 남대천을 찾아와 산란을 마치고 생을 마감합니다. 연어의 놀라운 회귀본능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고향의 물 냄새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 의존해 1만8000㎞를 헤엄쳐 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미해결 과제로 남았지만 엄연히 우리 삶터 주변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여정이지요. 바다에서부터 계곡까지 사투를 벌이며 역류하는 숭고한 본능. 수중보와 거센 물살, 낚시꾼 등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기나긴 귀향길에서 일생을 마치는 이들의 처절한 몸짓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개발로 하늘을 수놓던 도요새의 군무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으로 되어가고, 고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연어가 알을 낳기도 전에 허무하게 일생을 마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사는 땅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야생동물들의 귀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오랜 세월동안 죽음을 무릅쓰고 지속해온 숙명의 길이지요. 이 엄숙하고 경이로운 여정은 과연 우리의 후대까지 온전히 이어질 수 있을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