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의 에피소드
골프장의 에피소드
  • 김기호 KPGA프로·아주스크린골프
  • 승인 2016.02.11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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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의 똑소리 나는 골프이야기
▲ 김기호 KPGA프로·아주스크린골프

# 게으른 캐디를 깨운 용

잘 나가는 조폭이 머리를 올리러 갔다. 여름인데도 문신이 많아 긴 팔 티셔츠를 입고 라운드를 시작했다. 외모가 곱상한 그는 첫 티샷부터 오비가 났고 헤매기 시작했다. 캐디는 카트에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몇 번 클럽을 가져가라고만 했다. 2번 홀에서도 그는 계속 뛰어다녔고 캐디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조폭의 하얀 티셔츠가 땀에 젖으며 등에서 용과 호랑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용을 본 캐디는 3번 홀부터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객님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게으른 캐디를 깨우는 용은 상서로운 동물이다. 라운드가 끝나고 조상들이 왜 그렇게 용을 숭배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 세상의 모든 내기는 평등하다

내기 골프가 진행되고 있었고 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룰을 어긴 사람은 영향력 있는 인사였는데 계속 실수를 했다. 선배가 클레임을 걸자 그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사회적 지위를 운운하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선배는 모자를 벗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선생님, 내기 골프 앞에선 모든 것이 평등합니다. 계급도 사회적 지위도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이 조폭이든 대통령이든 신이든 상관없습니다. 내기 골프는 그 자체가 신성한 거니까요“내기가 신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유명인사의 플레이는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 현명한 캐디

골퍼가 머리를 올리고 몇 년 후에 다시 골프를 시작해 라운드하러 갔다. 그의 볼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자 캐디가 말했다. “사장님, 원래 머리는 풀었다가 다시 올리면 올리기가 어려운 법이에요.” 참으로 명쾌한 답변이다. 내기를 하는데 담배가 떨어져 모두 우왕좌왕할 때 그 캐디가 볼 박스를 꺼냈다. 거기엔 여러 종류의 담배가 들어 있었다. 모두 놀랄 때 그녀가 말했다. “저는 초보캐디라 고객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어 준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큰 감동을 준 그 캐디를 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친절인지도 모르겠다.



# 재산 따먹기 하는 것도 아닌데

아주 작은 내기인 홀 당 5000원짜리 스킨스 경기를 하고 있었다. 한 골퍼가 볼이 좀 맞지 않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퍼팅할 때 자신의 퍼팅 라인을 조금이라도 건너가면 에티켓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 명이 그의 공을 사이에 두고 계속 원을 그리며 퍼팅을 해야 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볼을 옮기는 만행도 저질렀다. 벌타를 받으라고 하자 “골프는 매너와 에티켓의 게임입니다. 너무 매정하시군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목욕탕에서도 계속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가 무슨 재산 따먹기 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지역사회에 “매정하시군요”란 별명을 가진 유명인사가 되었다.



# 캐디의 손을 물다

기분에 따라 거리를 계속 잘못 불러주고 라인을 반대로 말하는 캐디도 있다. 135야드에요 라고 말하고 선배가 그린을 훌렁 넘기자마자 165야드라며 죄송하다던 캐디가 있었다. 전반 홀 내내 캐디와 선배의 신경전은 계속되었고 선배의 골프는 망가져 갔다. 후반 첫 홀에서 단말마의 비명을 들었는데 선배가 캐디의 손을 물고 있었다. 평판이 좋은 그 선배는 드라이버로 오비를 세 번 내고 운 적도 있다. 분하고 억울하다며 드라이버를 헤드를 잡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실패를 모르던 그는 골프를 통해 수많은 좌절과 슬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 선배의 눈물 속에 골프의 모든 것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캐디를 물었던 이빨 속에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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