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19>
궁보무사 <21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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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님께 드릴 부탁이 하나 있사옵니다"
4. 가경처녀와 부용아씨

글 리징 이 상 훈 / 그림 김 동 일

잠시 후, 한벌성주의 명령을 받은 수곡이 정말로 한길 이상 되어 보이는 기다란 장봉(長棒)을 잡아 쥔 채 허겁지겁 이곳으로 달려왔다.

"자네, 저 처녀와 한 수 겨루어 보게나."

한벌성주는 자기한테 공손히 예를 올리는 수곡에게 가경처녀를 한쪽 손으로 넌지시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수곡은 조금도 주저 않고 가경처녀를 향해 기다란 봉을 똑바로 겨누었다.

"저 처자에게도 맞서 싸울 수 있는 봉(棒)을 던져주어라!"

한벌성주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맞서 보겠습니다."

가경처녀는 이렇게 외치며 즉시 대결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자 수곡은 여봐란 듯이 가볍게 봉을 몇 번 휘둘러 보더니 가경처녀의 도톰한 가슴팍 정중앙 부분을 향해 그대로 푹 찌르듯이 들어갔다. 가경처녀는 재빨리 몸을 틀어가지고 그의 예봉(銳鋒)을 일단 피해버렸다. 이윽고 두 사람의 대결은 무서운 불을 뿜어내듯 거칠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기에 눈이 멀어가지고 이번 시합은 무조건 져주기로 작정을 하고온 수곡의 봉이 가경처녀의 몸을 제대로 맞힐 리 없었다. 여러 차례 허탕질만 계속해대다가 수곡은 슬그머니 손에서 봉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허! 아니, 어찌된 일이냐 수곡 자네가 봉을 다 떨어뜨리다니."

한벌성주가 크게 놀라고 또 실망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죄송하옵니다. 성주님!"

수곡이 부끄러운 듯 머리를 얼른 조아리며 성주에게 말했다.

"어머머! 어서 빨리 떨어뜨린 봉을 다시 주워요. 그래서 공격해 보란 말이에요."

구경하던 부용아씨가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닙니다. 이번 승부는 이미 판가름 났습니다. 말을 탄 장수가 전장에서 싸우다가 말 위에서 그만 떨어지고만 꼴이 아닙니까 장사 수곡의 봉술을 거뜬히 이겨낸 저 처녀의 무술실력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율량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다. 좋다. 가경!"

높다란 단위에 앉아있던 성주가 가경처녀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점잖게 입을 다시 열었다.

"네, 성주님!"

"이제부터 너는 한벌성에 머물며 내 딸의 신변을 책임져줄 호위무사 역을 맡도록 하라. 너에 대한 모든 예우나 대우는 절대로 섭섭하지 않게끔 해줄 것이니라."

"감사합니다 성주님! 그런데 제가 성주님께 드릴 부탁이 하나 있사옵니다."

가경처녀가 방금 전 수곡을 상대로 시합을 벌렸던 탓인지 아직도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이렇게 다시 말했다.

"말해보라."

"실은,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한벌성주님께 충성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꼭 드리겠다며 준비해 놓으셨던 것들이 제가 살던 집 근처 동굴 안에 있습니다."

"그래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이라니 대체 그게 무엇이더냐"

"갖가지 동물 가죽들과 희귀한 약초들이옵니다."

"그것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적어도 마차로 서너 대 분량은 족히 될 것이옵니다."

"으으음."

성주는 입장이 몹시 난처한 듯 머리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도대체 이것을 한벌성주의 자격으로서 받아들여야하나 아니면 아예 무시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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