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
보시(布施)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5.11.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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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심억수

석천암(石泉庵)을 향해가는 길은 극락으로 향하는 착각을 불러온다.

괴산 청천면 삼송리 대야산 중턱에 자리한 석천암(石泉庵) 가는 길은 삼송리 마을 안길을 조심스레 지나야 사찰(寺刹)에 이르는 산길에 들어설 수 있다. 산길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가파른 경사로는 한참이나 아득하기만 하다. 차량으로 산에 올라간다고 해도 너무 급한 경사이기 때문에 운전이 서툰 사람은 중턱까지 밖에 오를 수 없다. 중턱에 마련해 놓은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그러나 한없이 힘든 산길만은 아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울긋불긋 다가오는 단풍 길에 기암괴석들을 만난다. 어디 그뿐이랴. 눈을 들어 멀리 보면 속리산 자락의 아름다움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땀을 흘리며 고행으로 산에 오를수록 부처님을 참배하고 난 후 중생이 얻는 기쁨은 한량없을 것이다.

늦은 밤 석천암(石泉庵) 보운 스님께서 전화하셨다. 내일 재(齋)를 드려야 하는 데 몸이 불편하여 부처님 전에 올릴 떡을 마련하지 못하였단다. 오전 10시 전까지 도착해야 재(齋)를 지낼 수 있다며 조심스레 떡 보시(布施)를 부탁하신다. 내일 10시 선약이 있었으나 스님의 사정에 선뜻 약속하였다. 동네 떡집이 문을 닫았다. 밤 9시가 넘었다. 밤늦도록 영업하는 떡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114에 문의하여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다행히 모 떡집과 전화 통화가 되었다. 오늘은 영업이 끝나서 내일 아침에 떡쌀 준비를 하므로 떡이 9시 30분이 되어야 한단다. 청주에서 석천암(石泉庵)까지 1시간 30분 남짓 소요된다. 난감하였다. 사장님께 전후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8시에 오란다. 다행이다. 이 모두가 부처님 뜻 아니겠는가?

다음날 아침 떡 보시(布施)를 위해 석천암(石泉庵)을 향해 가는 굽이굽이 길은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보시(布施)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조건 없이 나의 자비심을 보시(布施)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안개 자욱한 길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심정이 되어 설렘으로 조심스레 운전하였다.

스님과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였다. 10년 전 시사랑 회원들과 여름 피서를 하기 위해 삼송리 계곡을 왔다가 석천암(石泉庵)이라는 푯말을 따라 찾아간 곳이다. 한여름 땀을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갔다. 매우 작은 규모의 사찰이 눈에 들어왔다. 사찰의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는 돌계단을 따라 경내에 들어섰다. 거북 형상을 한 거대한 바위 아래 넓은 공간에 약사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곳이 보덕굴 약사전이다. 왼쪽으로 국내에서 가장 작은 대웅전과 산신각이 호랑이 바위에 조성되어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불심(佛心)을 담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도(道)를 전하는 무량(無量)의 도량(道場)이라며 나에게 설파(說破)하셨던 보운 스님의 참 마음이 나의 발길을 잡았던 곳이다.

불자(佛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베풀었든 보시(布施)가 기대했든 만큼의 복으로 돌아왔다고 느껴질 때는 그 보시(布施)가 나의 복덕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서운한 마음이 들면 그 보시(布施)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나의 마음에 따라 복이 되고 재앙이 되는 것이 불교에서 전하는 보시(布施)의 깊은 뜻일 것이다.

떡 보시(布施)를 하고 내려오는 길 가을 햇살에 단풍이 곱다. 계절은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아름다움을 보시(布施)하고 있다. 나에게 참 보시(布施)의 마음을 갖게 해준 석천암(石泉庵) 보운 스님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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