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다시 생각하기
걷기, 다시 생각하기
  •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5.10.1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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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교수의 교육현장
▲ 최지연

가을이다. 청명한 하늘, 부서지는 햇살, 물들기 시작한 색색의 단풍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을 살아있는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으로 밀려온다.

오늘은 이른 점심을 하고 교정을 걸었다. 햇볕이 좋아 엊그제까지 조금 쌀쌀했던 공기가 참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씨, 걷기에 딱 알맞은 그런 날이었다.

잠시 걸었을 뿐인데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느낌, 진짜 느낌만 그런 것일까?

심리학자 츠린카 소직-바직은 학습 동기의 차이가 학교나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얼마나 신체적인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느냐 즉, 신체적 행동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수업 분위기가 허용적인 유치원생들은 자신들의 내적 욕구에 따라 움직이며 공부하는 시간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된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학생들은 장시간 앉아 있도록 요구받고 학습 시 학생의 내적 욕구에 대한 규제가 많아지게 되는데 이것이 학습 동기 저하에 종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자의 주장을 넘어 실제 운영되는 프로그램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핀란드 교육문화부의 발표에 따르면 핀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그램인 리쿠바 코울루(Liikkuva koulu·움직이는 학교)를 핀란드 전역에 확산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산니 그란-라소넨(Sanni Grahn-Laasonen) 교육문화부 장관은 모든 학교가 더 활기찬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프로그램 확대를 결정하였다. 활기찬 수업이라… 핀란드의 학교들은 모든 학생들이 하루에 한 시간은 꼭 움직이도록 권장한다. 교육문화부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들의 움직임이 부족하여 우려할 정도의 수준인데 5학년 학생의 30%만이 매일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고 9학년의 경우 10%의 학생만이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고 있어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무활동현상(Liikkumattomuus)은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급의 학생들 사이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핀란드가 우려할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떨까?

학생들의 움직임, 선생님들의 움직임, 학교는 거의 움직임 없이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2010년 일본에서는 걷기를 교육활동에 넣는 보육(步育)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도쿄내의 한 사립초등학교는 아침에 10분 걷기를 통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소통을 도모하였고 치바현 후나바시의 한 유치원에서는 2007년부터 자전거 통학을 못하게 하여 모든 어린이가 걸어서 등하교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아이가 부모와 함께 유치원까지 걸어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특히 걷기를 통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통과 이해를 높이게 되었다고 한다.

걸어보니 교정은 어느새 가을의 한가운데로 성큼 들어가 있었다. 노랗게 물든 튤립나무와 빨갛게 딸기 같은 열매를 달고 서 있는 산딸나무는 벌써 겨울 맞을 채비를 하는지 잎도 열매도 가을걷이에 한창이고, 아직 푸른 잎 사이로 반쯤 붉힌 대추를 단 대추나무와 주황으로 물든 감나무를 바라다보자면 어릴 적 고향 마을과 친정어머니 생각이 간절하기도 하다. 가을의 교정을 걸으니 몸도 마음도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다.

역사교과서 문제, 교육과정 개정 문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수능 등 학생도, 선생님도, 그리고 교육에 종사하는 여러 사람은 여전히 어렵고 힘겹다. 힘겨움 잠시 내려두고 나가서 햇볕 아래 걸어보자. 맑고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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